“뻥 뚫린 사회안전망… 교회가 채우자”

입력 2014-03-05 18:34 수정 2014-03-06 02:32


생활고나 신변을 비관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이들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달 26일 서울 석촌동 세 모녀 동반자살에 이어 경기도 광주와 동두천, 서울 화곡동, 전북 익산 등지에서 빈곤 등으로 지친 가족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국교회는 충격과 자괴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주요 교회들은 지난 2일 주일예배를 통해 세 모녀의 죽음 앞에 그리스도인의 책임을 통감했다. 김기석 청파교회 목사는 “그들은 ‘죄송합니다’고 했지만 사실 죄송한 것은 우리”라면서 “살려달라고 부르짖는데도 들은 척도 하지 않은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이라고 지적했다. 김경호 들꽃향린교회 목사는 “마지막 길을 택한 그들의 절망감과, 그들과 함께 하지 못한 책임감에 가슴이 저민다”고 말했다.

심각한 것은 타인의 자살 소식을 접하고 이를 따라하는 ‘베르테르 효과’가 우려된다는 점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세 모녀 자살 사건이 있었던 지난 주(2월 24일∼3월 2일) ‘동반 자살’을 검색한 빈도는 평소보다 2배 이상 늘어났다. 자살에 대한 뉴스와 관심 자체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에게 삶을 포기하는 촉매가 될 수 있다.

교계 전문가들은 자살을 더 이상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지 말고 한국교회가 함께 고민하고 대처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복잡한 사회구조 속에서 감당하기 힘든 고통에 내몰리는 이들을 한국교회가 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적 김포평화교회 목사는 “한국교회는 그동안 영혼구원에는 충실했지만 소외계층 구제에는 소홀히 한 경향이 없지 않다”며 “교회가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혼 등으로 인한 한 부모 가정과 조손가정, 극빈층에 대한 지원이 가장 시급하다. 세 모녀 사건에서도 교회가 영적 건강을 돌볼 수 있는 상담 서비스나 구호기금을 제공했다면 비극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견해다.

조성돈 실천신학대학원대 교수는 “생명을 가벼이 여기는 죽음의 문화가 사회에 만연한 것 같다”며 “생명을 살리고 신앙의 본질을 회복하는 사역에 한국교회가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할 때”라고 말했다.

서울 서대문구에서 자살예방기관인 ‘마음쉼터 위드 하우스(with house)’를 운영하는 정진 권사는 “한국교회에 적지 않은 상담센터가 있고 자살예방사업 등 기본적 틀도 확보돼 있다”면서 “아쉬운 것은 내실 있게 운영되지 못한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세 모녀 사건을 계기로 드러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움직임도 구체화되고 있다. ‘세 모녀의 비극적 죽음을 추모하는 그리스도인 연대’는 5일 서울 중구 태평로 서울파이낸스센터 인근에서 추모의식과 기자회견을 갖고 종교인으로서 이웃에게 무관심했던 태도를 반성하고, 정부에 사회 안전망 구축 등의 대책을 촉구했다.

그리스도인 연대는 성명을 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최근 연이어 벌어지고 있는 가난한 이웃의 죽음 앞에 말할 수 없는 비통함과 회개의 마음으로 국민과 정부에 호소한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정부의 입장과 대책을 밝혀줄 것, 빈곤가족의 집단자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할 수 있는 범정부·범사회적 기구의 설치, 각종 사회보장 및 사회복지 수준 축소시도 중단 등을 요구했다. 그리스도인 연대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정의평화위원회, 기독교사회선교연대회의, 성공회정의평화사제단 등 9개 단체로 이번 사건을 계기로 결성됐다.

유영대·최승욱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