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가 튼튼” 골리수의 유혹… 광양 백운산 등 고로쇠나무 수액 채취의 계절
입력 2014-03-06 01:32
섬진강 매화가 꽃망울을 터뜨리자 백운산을 비롯한 지리산, 덕유산, 노자산 등 남도의 산이 깊은 겨울잠에서 깨어났다.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을 맞아 고로쇠나무가 따스한 봄 햇살에 기지개를 켠다. 실핏줄 같은 수관을 흐르던 수액이 두꺼운 껍질을 뚫고 방울방울 이슬처럼 맺힌다. 뼈에 이롭다고 해 골리수(骨利水)로 불리는 고로쇠나무 수액이다.
우리나라 최대의 고로쇠나무 수액 산지는 전남 광양의 백운산(1218m). 광양(光陽)은 지명처럼 일조량이 많은 지역으로 고로쇠나무 생육에 필요한 강수량도 풍부하다. 단풍나무과인 고로쇠나무의 수액은 주로 해발 600∼900m 고지에 뿌리를 내린 수령 70∼100년의 고로쇠나무에서 채취된다.
백운산의 고로쇠나무 군락지는 동곡계곡을 비롯해 성불계곡, 어치계곡, 금천계곡 등이다. 그 중에서도 백운산 정상과 따리봉 사이의 한재 고개에서 발원한 10㎞ 길이의 동곡계곡에서 가장 많은 수액이 채취된다. 겨우내 찾는 사람 없어 쓸쓸하던 백운산은 2월 초순부터 3월 하순까지 두 달 동안 수액을 채취하는 농민들의 발걸음으로 아연 생기를 띤다.
고로쇠나무 수액은 날씨가 쾌청하고 일교차가 15도 이상일 때 수간압에 의해 생성되는 약수이다. 이때 고로쇠나무 둥치에 직경 6∼8㎜ 가량의 구멍을 뚫고 고무호스를 꽂으면 링거액처럼 수액이 한 방울 두 방울 흘러나와 달착지근한 맛의 약수로 거듭난다.
수액에는 칼슘, 칼륨, 마그네슘, 염산이온, 황산이온 등 필수영양소인 미네랄 성분이 물보다 40배나 많이 함유되어 있다고 한다. 에너지 공급원인 자당과 비타민, 철분, 망간 등 무기질도 많아 골다공증, 신경통, 위장병, 변비, 피부미용, 산후통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고로쇠나무 수액은 물과 달리 많은 양을 섭취해도 배탈이 나거나 물리지 않는 게 특징.
고로쇠나무 수액의 역사는 1100년 전으로 거슬러 오른다. 통일신라 말의 풍수지리가인 도선국사는 광양 옥룡사에서 가부좌한 자세로 수도를 하다 일어서려고 했으나 무릎이 펴지지 않았다고 한다. 도선국사는 마침 옆에 있던 고로쇠나무 가지를 붙잡고 일어서다 가지를 부러뜨린다. 그리고 부러진 가지에서 떨어지는 수액을 마시자 곧바로 무릎이 펴졌다고 한다. 고로쇠나무 수액이 뼈에 이롭다고 골리수(骨利水)로 불린 사연이다.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백운산을 마주보는 지리산도 골골이 고로쇠나무 수액 생산지이다. 경남 산청, 함양, 하동은 물론 전남 구례, 전북 남원 등 지리산을 둘러싼 청정계곡에서 생산된 고로쇠나무 수액은 가공공장에서 위생처리를 한 게 특징. 피아골 계곡의 마지막 마을인 구례 직전마을은 지리산에서도 손꼽히는 고로쇠나무 수액 생산지이다.
건강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고로쇠나무 수액을 찾는 사람이 늘어나자 생산지도 전국 곳곳으로 확산되고 있다. 덕유산 자락에 위치한 경남 거창과 전북 무주, 경남 거제의 노자산 가라산 북병산, 경북 울릉도, 강원도 홍천 인제 춘천 양구의 40개 마을도 고로쇠나무 수액을 생산하고 있다. 특히 경북 울릉도와 경남 거제에서 생산되는 고로쇠나무 수액은 해풍을 맞고 자라 맛이 독특하다. 자작나무과인 거제수에서 채취하는 수액은 곡우(4월 20일) 무렵이 제철.
고로쇠나무 수액은 마시는 방법도 독특하다. 체내에 쌓인 노폐물을 제거하기 위해선 고로쇠나무 수액 한 말(18ℓ)을 4∼5명이 밤새도록 마셔야 효과가 있다고 한다. 오징어, 명태, 땅콩 등 짭짤한 음식을 곁들이면 많은 양의 수액을 마실 수 있다고. 냉장고에 보관한 수액을 물이나 차 대신 마셔도 좋지만 오랫동안 보관하면 변질되므로 주의해야 한다.
해마다 이맘때면 광양 옥룡면의 100여 민박집에서는 구들장이 지글지글 끓어오르는 황토방에서 네댓 명이 투가리(항아리)를 가운데 두고 큰 사발로 수액을 들이키는 모습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고로쇠나무 수액 채취기간 중 계곡 주변의 민박집에서는 무료로 숙박할 수 있다.
고로쇠 축제기간 중에 산지를 방문하면 무료 시음회는 물론 싼값에 고로쇠나무 수액을 구입할 수 있다. 지역별 고로쇠 축제는 다음과 같다. △백운산고로쇠약수제(전남 광양)=3월 6일 △거창하늘마을고로쇠축제(경남 거창)=3월 15∼16일 △양평단월고로쇠축제(경기도 양평)=3월 15∼16일 △미산계곡방태산고로쇠축제(강원도 인제)=3월 22∼23일
광양=글·사진 박강섭 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