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전석운] ‘정말 죄송합니다’ 란 유서

입력 2014-03-06 01:35


서울 송파구 세 모녀가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지 1주일이 지났다. 그러나 아직 우리 사회는 왜 세 모녀가 동반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전에 주변에서 도울 방법은 없었는지,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해답을 못 찾고 있다.

떠난 사람들은 말이 없지만 라면값까지 꼼꼼히 적어놓은 가계부나 토익시험 참고서, 단란했던 가족 앨범 등 유품들이 발견된 걸 보면 생의 의지가 약한 분들은 아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당뇨병을 앓았던 큰딸(35)과 신용불량자가 된 둘째 딸(32)을 부양해야 하는 어머니(60)의 어깨에 드리워진 삶이 무거웠을 것이다. 그래도 어머니는 식당일을 하면서 번 수입으로 근근이 버틸 수 있었을 것이다.

힘든 내색을 좀체 하지 않던 이 가족이 서로에 대한 위로와 버팀목이 되기를 포기하고 마지막 희망의 끈을 놓아버린 것은 어이없게도 어머니의 낙상이었다. 낙상으로 팔을 다친 어머니가 깁스를 하면서 식당일을 못하게 되자 수입이 끊어진 것이다. 그리고 한 달여 만에 가족은 나란히 먼 길을 떠났다.

한번 넘어졌다고 세상을 …

그 한 달여 동안 주변의 누구도 이들을 돕지 않았다. 그들의 고통을 알아차리지도 못했다. 그들을 찾아온 건 월세, 전기세, 공과금뿐이었다. ‘당사자들이 도와 달라고 하지 않아서 지원을 하지 못했다’는 설명은 ‘신고를 해야 범죄를 알고, 자수를 해야 범인을 잡는다’는 말과 다를 바 없다.

빈곤층을 돕는 제도는 많이 있다지만 세 모녀를 모른 체했다. 설사 그들이 도움을 요청했더라도 아무 도움이 되지 못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현행 기초생활수급제는 아무런 벌이가 없어도 ‘추정소득’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이들 세 모녀를 돕지 않는다. 당뇨병 환자와 신용불량자에게 60만원씩 120만원의 벌이가 있을 것으로 ‘추정’하는 것이다. 이런 추정은 경험치에서 나온 것이겠지만 절대 위기 빈곤가정에 획일적으로 적용한다면 몰인간적인 제도의 차가운 얼굴일 뿐이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비극의 1차 책임은 정부가 져야 한다. 최저생계비 이하로 살아가는 절대 빈곤층은 410만명으로 추정되지만 지난해 기초생활수급자는 135만여명에 그쳤다. 빈곤율은 여전한데 정부가 지원하는 대상은 역대 최저수준으로 떨어졌다. 복지확대를 외치고 출범한 정부가 빈곤층 지원에는 오히려 인색한 것이다.

송파 세 모녀 자살사건 이후 유사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3일 경기도 광주시는 송파 사건을 계기로 빈곤 위기 가정 발굴에 적극 나서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바로 그날 광주에서 40대 가장이 어린 아들(4), 지체장애 딸(13)과 함께 동반자살했다. 앞서 2일에는 서울 화곡동과 경기도 동두천에서 가난과 장애를 비관한 가족들이 생을 마감했다. 얼마나 더 참극이 벌어져야 복지부동(伏地不動)의 복지(福祉)제도와 지원체계가 개선될까.

정말 죄송한 건 우리들

송파 세 모녀가 마지막으로 남긴 것은 70만원이 든 하얀 봉투였다. 봉투 겉면에는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란 글이 쓰여 있었다. 이들 모녀의 한 달 식비는 20만원이었다. 3개월은 더 연명하고도 남을 돈을 건네면서 ‘죄송하다’고 했다. 보증금 500만원도 남아 있기 때문에 아직 집주인이 손해볼 건 없다.

그런데도 그들은 한 번도 밀린 적이 없었던 월세 내는 건 잊지 않았다. 그런데 왜 죄송하다고 했을까. 사후 처리의 폐를 끼치게 될까봐 미안했던 것일까. 죄송한 건 그들의 아픔을 덜어주지 못한 우리들이다. 정부가, 사회가, 이웃이 머리를 숙여야 한다. 우리 모두가 그분들에게 큰 빚을 졌다. 정말 죄송합니다.

전석운 사회부장 swc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