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풍향계-최영진] 야권신당의 성공 조건

입력 2014-03-06 01:33


“정략적 야합이란 비판 불식시키려면 구체적인 정치개혁과 민생대책 내놔야”

한국 정치를 이해하는 키워드는 ‘바람(風)’이다. 바람의 정체는 어디로 불 줄 모른다는 데 있다. 한국 정치의 매력은 바람의 가공할 불확실성에서 비롯된다. 선거 때만 되면 어김없이 불어 닥친 바람은 야권연합, 혹은 통합이었다. 한국에서 정당정치가 시작된 이후, 야권통합의 바람이 불지 않은 때가 없었다. 야권통합은 변수라기보다 구조적 상수에 가깝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번에 민주당과 안철수의 통합신당 발표는 다소 충격적이었다. 민주당의 속내야 뻔한 것이지만 안철수의 반민주당 정서는 강고했기 때문이다. 안철수는 민주당을 향해 “지역주의에 안주하고 혁신을 거부하는 세력”으로 질타하면서 “정치공학적 연대는 결코 없을 것”이라고 호언했다. 그런데 통합의 바람이 분 것이다. 정치현실에서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는 어떤 것도 가능하다”는 격언이 다시 한번 통한 것이다.

원론적으로 보면 통합신당은 ‘정치공학적 야합’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두 정치세력이 통합할 어떤 이념적 동질성이나 정서적 친화력도 발견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게다가 두 세력의 대표끼리 은밀히 모여, 기존 당을 해산하고 새로운 당을 창당하겠다고 발표하는 것 자체가 정략정치의 표본이다. 안철수의 새 정치를 염원하던 사람들에게는 ‘새 술을 헌 부대에 담는 것’과 같은 일이 될 것이라는 우려 또한 부정할 수 없다. 구태정치로부터 구별되는 새 정치의 꿈을 잃어버린 것 같은 실망 또한 적지 않을 것이다.

이런저런 문제가 있는 것이지만, 한국정치의 큰 그림에서 볼 때 야권통합을 꼭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특히 이번 6·4 지방선거처럼 여당의 압도적 우위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지리멸렬한 야권의 존재는 정치적으로 그리 올바른 결과를 가져오지 못한다. 사실 정부와 새누리당은 50%를 넘어서는 대통령의 지지도에 기대어 별다른 노력도 기울이지 않는 모습을 보여 왔다. 기초선거공천폐지 건도 그렇고 각종 대통령 공약파기에 대해서도 새누리당은 진지한 태도를 보여주지 못했다. 논문표절 파문으로 출당했던 문대성 의원을 복귀시킨 것도 거대여당의 오만함을 보여준 사례이다. 1강2약의 압도적 우위구조에서 여당이 태만해질 수 있는 것이다.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가며 당 이름과 함께 당색(黨色)까지 붉은 색으로 바꾸었던 지난 대선 전과는 판이하다.

이번 지방선거가 1대 1 구도로 진행된다면 여야 모두 긴장할 수밖에 없다. 정당 지지도도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 상황이다. 지금부터 어느 당이 더 열심히 국민의 목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선거결과가 좌우될 것이다. 새누리당은 국정에 무책임한 태도에서 벗어나 보다 적극적으로 국민들의 삶을 살피는 정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새롭게 만들어질 통합야당도 정책개혁과 민생중심주의의 구체적 내용을 제시해야 한다.

안철수 현상으로 표출되었던 새 정치에 대한 국민의 열망을 담아내는 일을 체감할 수 있는 방식으로 수행해야 한다. 여야 간의 생산적 경쟁관계가 이루어지고, 이들 간의 경쟁이 국민의 목소리에 겸허하게 귀 기울이게 할 때 한국정치는 발전하는 것이다. 여야 대결구조는 과열경쟁의 해악을 낳게 되겠지만, 동시에 민심 얻기 경쟁이 갖고 있는 미덕 또한 가져오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그리 부정적으로 볼 필요가 없다.

이제 남은 문제는 새롭게 만들어질 통합야당이 어떤 모습으로 우리 국민 앞에 나타나느냐에 달려 있다. 여야 간의 생산적인 경쟁관계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그러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건강한 여당과 힘 있는 야당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통합야당은 국민들이 기대하는 야당의 모습으로 거듭나야 한다. 단순히 선거를 앞둔 정략적 야합이라는 비판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그들이 통합선언에서 밝혔듯이 정치개혁과 민생중심주의를 구체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정책,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콘텐츠를 내놓기 바란다.

최영진(중앙대 교수·정치국제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