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성기철] 야합

입력 2014-03-06 01:31

공자는 부모의 야합(野合)으로 태어났다. 사마천이 역사서 사기에 ‘紇與顔氏女野合而生孔子’라고 기록한 것이 그 근거다. 아버지 숙량흘이 60세가 넘어 16세이던 어머니 안징재를 만나 공자를 낳았다는 얘기다. 인간도덕 규범을 세우는 데 일생을 바친 그가 ‘들판에서 교합하다’는 뜻을 가진 야합의 산물이라니 아이러니다.

야합은 어감이 참 좋지 않다. 그럼에도 정치인들은 이 단어를 자주 입에 올린다. 반대편 정파나 정치인이 통합이나 연대를 할 경우 어김없이 정치적 야합이라고 비판한다. 3당통합, DJP연합, 노·정 단일화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1990년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는 노태우 대통령, 김종필 신민주공화당 총재와 더불어 3당통합을 결행했다. 민주투사라 불리던 정치인이 타도 대상으로 삼았던 군사정권 세력과 손을 잡자 김대중 총재의 평화민주당으로부터 야합이란 소리를 들어야 했다. 호랑이를 잡기 위해 호랑이 굴에 들어간다고 했지만 대통령이 되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비판을 피하긴 어려웠다.

1997년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대선 후보는 표밭 확장을 위해 김종필 자유민주연합 후보를 상대로 공동정부 구성을 통한 후보단일화 합의를 이끌어냈다. 민주화 세력과 근대화 세력의 대화합이라고 포장했지만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로부터 권력 나눠먹기식 야합이란 비난을 받아야 했다. DJP연합 합의문에 ‘대통령은 국무총리의 의사에 반해 국무위원을 해임할 수 없다’는 위헌 조항까지 넣은 것은 비난받을 만했다.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민주당 후보는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와 단일화를 이뤄냈다. 서민 대통령을 표방한 노 후보가 재벌 출신 정치인과 손잡은 데 대해 한나라당은 역시 야합이라고 규정했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은 이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결국 통합과 연대를 통해 대통령이 됐다.

안철수 의원이 독자적인 신당 창당을 포기하고 민주당과의 통합신당 창당에 나선 데 대해 새누리당이 연일 야합이라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하지만 앞서 열거한 세 경우에 비하면 야합 축에도 못 낀다. 두 정파의 정치적 이념과 목표가 크게 다르지 않기에 야합이란 비난에 괘념할 필요는 없다. 문제는 안 의원이 ‘새 정치 신당’을 너무 쉽게 포기해 버렸다는 점이다. 국민과의 약속을 어겨버린 그가 계속해서 ‘따뜻한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안 의원이 안쓰럽게 느껴지는 걸 어쩌랴.

성기철 논설위원 kcs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