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전 화염병 피해자 도미선씨 공무원으로 당당한 삶
입력 2014-03-05 16:14
[쿠키 사회] “소주병만 봐도 25년 전의 끔찍한 기억이 떠오르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합니다.”
시위 현장을 지나다가 갑자기 날아온 화염병에 중화상을 입었던 여중생이 공무원으로서 당당한 삶을 꾸려가고 있다. 광주 북구청 교환실에 근무하는 도미선(39)씨.
도씨는 중학교 3학년이던 1989년 11월 광주 중흥동 옛 민정당사 앞 버스정류장에서 불행한 사고를 당했다. 민정당사를 향해 던진 시위대의 화염병이 벽에 부딪쳐 깨지면서 평소처럼 학교에 가던 도씨가 불길에 휩싸인 것이다. 고입시험을 코앞에 앞둔 도씨는 얼굴과 손 등에 중화상을 입었다.
‘구술 시험’을 통해 전남대 사대부고에 진학했지만 10여 차례의 수술에도 화상 부위 근육과 관절의 통증은 극심했다. 국가로부터 보상을 받기 위해 뛰어다니시던 아버지는 1992년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결국 고교를 휴학하고 치료에 전념하다가 동기에 비해 3년 늦게 전남대 사대부고와 목포대 사학과 졸업했다. 그 사이 학업에도 열중해 사무자동화 산업기사와 정보처리기사 자격증 등을 따기도 했다.
하지만 사회의 벽은 높았다. 면접을 거쳐야 하는 취업은 매번 도씨에게 좌절을 안겼다.
평범한 삶을 꿈꾸던 도씨는 ‘긍정의 힘’을 믿고 버텼다. 2000년 대학 졸업 후 광주의 한 약국에서 1년여간 일하던 도씨는 2002년 주위의 소개로 북구청에 일용직 공무원으로 채용됐고 11년만인 지난해 정규직(무기계약직)으로 신분이 전환됐다.
“저를 뒷바라지 하느라 고생하신 어머니(63)를 모시고 가끔 나들이를 할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지난 주말에도 여수 오동도에 다녀왔는데 밤바다의 경치가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경기도 공립고에서 교사생활을 하는 오빠와 서울에서 세무공무원으로 근무 중인 남동생까지 ‘공무원 가족’을 이루게 됐다고 어머니가 무척 좋아하세요.”
도씨는 “안정된 직장에서 열심히 맡은 바 업무에 충실할 수 있게 돼 행복하다”며 “아무리 큰 고난이 닥친다고 해도 그것을 극복하고 살아야 되는 게 우리의 인생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광주=국민일보 쿠키뉴스 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