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여성CEO 열전] ⑨ 윤경숙 한국조리사관직업전문학교 이사장
입력 2014-03-06 02:31
“사랑이란 재료로 ‘인생 요리법’도 가르칩니다”
“사랑합니다.”
윤경숙(52) 한국조리사관직업전문학교(한조사) 이사장이 실습실에서 커피를 내리는 학생들에게 특유의 허스키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학생들도 당황한 기색 없이 “사랑합니다”라 답했다. 일반 학교에선 보기 힘든 생소한 모습이다. “15년 전부터 학생들과 이렇게 인사를 나눴습니다. 이 한마디가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할 수 있게 하거든요.”
윤 이사장은 학교 운영의 모든 답이 ‘사랑’에 있다고 했다. 교육자가 사랑이 없으면 학생의 미래를 책임질 수 없다는 것이다. 호쾌한 웃음이 인상적인 그를 지난 3일 서울 영등포구 버드나루로의 학교에서 만났다.
악바리, 교회 부엌에서 재능 발견하다
대학진학을 앞둔 윤 이사장의 전공 선택 기준은 단 하나였다. ‘여자가 거의 없는 학과로 가자.’ 80학번인 그는 ‘여자라면 가정학과’란 도식이 맘에 들지 않았다. 윤 이사장은 축산학과에 진학했다.
전투적인 성격과 학습태도로 부친에게 농림부 장관감이란 기대를 받기도 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1984년 졸업 직후 전공을 살려 정부 산하단체에 취직한 그는 열과 성을 다해 일했다. 결혼식과 출산 전날까지 야근했고 출산 뒤 보름 만에 복직했다. 대졸 여직원이 흔치 않던 때였다. 인정받기 위해 악바리처럼 일했지만 직장선배와 동료들은 그의 열심을 부담스러워했다.
결국 그는 89년 퇴직서를 제출해 전업주부가 됐다. 의욕 넘치는 성격은 살림에도 고스란히 반영됐다. 윤 이사장은 요리할 때마다 넉넉하게 만들어 이웃과 교회 성도들에게 나눠줬다. 교회 식당봉사에도 참여해 매주 100∼200인분 식사를 대접했다. 음식에 대한 호평이 이어지자 그는 욕심이 났다. ‘더 맛있고 다양한 요리를 대접해 보자’는 생각에 윤 이사장은 요리학원에 등록했다.
윤 이사장은 요리기술조차 일하듯 익혔다. 2년간 한식, 일식, 중식, 제과·제빵, 복어조리, 칵테일 수업을 들었다. 수업이 끝나면 집에서 새벽까지 요리실습을 했다. 강사의 작품을 그대로 재현할 정도로 실력이 늘자 같은 반 학생들은 강사 대신 그에게 질문했다. 그의 설명에 학생들도 곧 작품을 완성했다. 이는 그가 요리학원을 차리게 된 계기가 됐다.
“요리를 좋아하고 맛깔 나게 만들긴 했지만 강사들처럼 정교하게 만들진 못했어요. 일명 ‘손’을 타고나지 않은 거죠. 근데 제가 각자 성격과 신체조건에 맞게 가르치니 성과가 나타났습니다. 요리를 가르치는 일이 제 적성을 맞는다는 확신도 들었고요.”
매일 기적을 맛봤다. 이제 돌려줄 차례다
외식교육 분야로 진로를 바꾼 윤 이사장은 92년 한 가전기업의 요리학원 원장으로 재취업했다. 40세에 시작한 ‘제2의 인생’은 순조롭게 출발했다. 그는 2년간 해당 기업에 속한 전국의 요리학원 중 가장 많은 수강생을 모았다. 하지만 조리매뉴얼에 맞춘 요리지도에 제약을 느낀 그는 99년 경기도 수원에 한조사의 전신인 ‘동양요리학원’을 차렸다.
학원을 열자 비행청소년들이 적잖게 찾아왔다. ‘공부 대신 요리에서 살길을 찾으라’며 부모나 교사에게 등 떠밀려온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윤 이사장은 가정과 학교에서 천덕꾸러기 취급받는 이들이 꿈을 찾도록 성심성의껏 지도했다. 무엇보다 각종 요리대회와 자격증 시험 대비에 집중했다. 수상실적을 관리해 대입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입시가 끝이 아니었다. 기초학력이 부족한 제자들은 대학 공부를 따라가기 버거워했다. 이론수업 위주인 대학에서 공부하다 실무능력이 녹슬어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것 또한 문제였다. 재능이 탁월한 아이들의 ‘손’을 썩히지 않기 위해 윤 이사장은 기술과 학력을 동시에 완성하는 학점은행제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기존 사업을 확장할 계획은 없었다. 그런데 전혀 예측치 못한 일이 생겼다. 임차해 있던 수원의 학원건물이 경매에 넘어간 것. 울며 겨자 먹기로 부지를 찾던 윤 이사장은 2006년 서울 금천구의 한 아파트형 공장을 소개받는다. 300평 규모의 건물은 그가 가진 돈에 비해 턱없이 비쌌다. 포기하고 돌아서려 하자 계약 담당자는 윤 이사장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금액을 불렀다. 이 같은 기적은 2011년에도 이어졌다. 학점은행제 도입 후 학생 수의 급속한 증가로 더 넓은 공간이 필요해 현 건물을 알아봤지만 비용이 꽤 많이 모자랐다. 그럼에도 건물주인은 그와 계약했다. 건축 과정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느꼈다는 그는 건물 앞 머릿돌에 다음과 같은 말을 새겼다. ‘여호와께서 이 땅을 우리에게 주셨다.’
매일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했다는 윤 이사장은 도움이 필요한 곳에 기적을 선물할 계획이다. 2006년부터 ‘기술로 선교하는 학교’를 목표로 삼은 그는 2012년 콩고를 다녀왔다. 아프리카에 식료품 공장과 기술학교 등을 세우는 등 선교계획을 구체화하기 위해서다. 2012년부터 필리핀, 티베트 지역에 봉사여행을 떠나는 교수와 학생들도 적극 지원한다.
그는 후배 기독여성CEO에게 ‘성령님의 감동대로 순종하고 사업할 것’을 조언했다.
“막연하게 들릴지 몰라도 하나님께 맡길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머릿속에 그림을 그린 채 기도하지 마세요. 하나님의 기적은 우리 예상을 넘어섭니다. 성령의 감동에 따르는 신앙생활로 한계 없는 하나님을 경험해 보시길 바랍니다.”
◇윤경숙 이사장
△1962년 출생 △1984년 영남대 축산학과 졸업 △2004년 경기대 외식산업경영 전공 석사 △2014년 경기대 외식조리관리 전공 박사 △1999년 동양요리제과제빵학원(한국조리사관직업전문학교 전신) 설립 △2006년 한국조리사관직업전문학교 이사장 △2011년 한국외식산업진흥원장 △2010년 경인지방식품의약품안전청 최고지도자상 △2012년 한국산업인력공단 한국HRD대상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