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MCA, 새로운 100년의 약속] (9) 소비자의 벗, YMCA 시민중계실

입력 2014-03-06 01:32


日帝 때 농민 보호 운동, 소비자 권익 운동으로

“20년 전에 친오빠가 의료사고로 사망했습니다. 오빠는 돌아올 수 없지만 더 이상 다른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누군가는 나서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배우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찾았죠.”

A씨가 찾아간 곳은 YMCA 시민중계실. 그녀는 이곳에서 매주 한 차례 소비자 상담을 맡아 자원봉사자로 23년째 활동하고 있다.

Y시민중계실은 억울한 일,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힘이 없거나 방법을 몰라 부당한 처우를 감수해야 하는 시민(또는 소비자)의 문제를 중계 또는 직접 처리해주는 Y의 자원봉사운동 조직이다. Y가 펼치는 소비자운동을 대표하는 시민중계실은 소비자 입장에서 지역사회 문제를 공론화하며 해법을 찾는 주된 통로가 되고 있다. 특히 상담에만 그치지 않고 공청회나 강연회 등을 통해 집단적 피해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법·제도 마련에도 힘을 쏟고 있다.

5일 시민중계실 통계에 따르면 최근 3년간(2011∼2013) 전국 23개 지역Y에 접수된 상담 건수는 총 7만3665건. 연 평균 2만4555건으로 매일 약 20분마다 한 건꼴로 상담전화가 걸려오는 셈이다.

시민중계실에는 평균 20년 근속의 베테랑급 자원봉사자만 전국적으로 100여명에 달한다. 또한 변호사와 세무사, 손해사정인, 감정평가사 등 다양한 영역의 전문가들이 시민권익 변호인단으로 참여해 전문 분야 상담을 지원하고 있다. 이들 변호인단은 자동차 급발진 피해 소송 등과 같은 공익 소송을 지원하기도 했다.

Y소비자운동의 역사는 Y 결성 초기인 192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다수 농민들이 빚에 쪼들리며 살고 있었다. 연평균 이자가 3부6리 이상이었다. 이 빚 때문에 농민들은 지주에게 땅을 빼앗기고 그래서 소작인으로 전락하고 나중에는 절망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이러한 빚투성이에서 농민을 구출해내는 운동이 협동조합운동이었다. 이 운동은 남편들이 노름판에 빠져 정신을 잃고 있을 때 가정부인들은 끼니마다 몇 줌씩의 쌀을 모아 가지고 시작한 것이다….”(홍병선 당시 Y농촌운동 지도자·한국기독교청년회운동사, 1978)

일제 강점기이던 당시 인구의 80% 이상을 차지한 농민은 스스로 살 길을 찾아야 했다. Y는 일제의 경제적 침탈과 더불어 빠르게 이식되고 있던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농민을 위한 사역에 팔을 걷었다. 일제하 Y는 당시 연희전문학교와 함께 서울 신촌의 고등농민수양소 등 야학 및 주학을 개최하면서 어린이 및 성인 교육에 적극 나섰다. 지금의 소비자·시민 교육의 첫걸음을 뗀 셈이다.

1930년대에 접어들면서 Y농촌사업은 장로교파와 에큐메니컬(교회일치연합) 운동으로 발전되어 갔다. 1930년 9월, 조선예수교연합공의회가 ‘농촌부’를 신설했다. 당시에 진행하던 사업은 Y농촌부와 협동하기로 했다. 또한 장로교 및 감리교 소속 선교사로 조직된 ‘선교부 농업전문가회’도 탄생했다.

협동조합운동을 비롯한 이 같은 Y 활동의 열매는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1929년 당시 농촌사업 조직을 완료했거나 진행 중인 마을이 358곳, 소비자협동조합 등이 꾸려진 협동조합은 49곳(조합원 1692명)에 달했다. 또한 농민강습소를 수료했거나 수업을 받고 있는 학생이 1만649명으로 집계됐다.

지금의 소비자운동은 일제하 소비자운동과 마찬가지로 1970년대 이뤄진 급속한 산업화의 산물이다.

1974년 고금리에 시달리던 농민들이 양곡은행운동을 전개한데 이어 78년 ‘억울하고 부당한 피해를 입었지만 법과 제도를 몰라 피해보는 시민에게 힘과 도움이 되어주자’는 취지로 Y시민중계실 운동이 비로소 시작됐다.

시민중계실 활동은 소비자의 눈높이에 초점이 맞춰졌다.

70∼80년대의 세입자 보호운동 및 주택임대차보호법 제정, 외채 문제 해결을 위한 양담배 불매운동과 국산 타이어 이용운동, 그리고 90년대로 이어진 세입자보호조례 제정운동, 담배자판기 추방운동, 소비자 피해예방 교육, 다단계 피라미드 판매금지법 제정, 의료사고 피해구제 등이 대표적이다.

2000년대 들어서는 정보통신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 CID(발신자번호표시) 무료화운동과 문자서비스 요금인하운동, 통신요금 인하운동 등이 대표적인 소비자운동 사례로 꼽힌다.

1998년 IMF 외환위기 당시 시작된 녹색가게운동은 소비자운동의 전환점이 되기도 했다.

소비자운동이 그동안 상담과 법률구제 등 전통적인 소비자 권익보호 활동으로 이어져왔다면 녹색가게운동은 주민 스스로 펼쳐가는 ‘미래를 생각하는 녹색소비실천운동’으로 한걸음 더 나아갔다. 생활운동이자 환경운동, 문화운동으로 소비자운동의 인식과 지평을 넓히는 계기가 된 것이다. 2005년 전국녹색가게운동협의회로 분리 독립한 녹색가게는 현재 서울 경기 강원 등 54곳에서 운영 중이다.

심유경 정책사업국 간사<한국YMCA전국연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