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회장, SK계열사 등기이사직 모두 내려놓는다
입력 2014-03-05 02:32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맡고 있는 등기이사 자리를 모두 내려놓는다. 도의적 책임을 지고 백의종군하겠다는 것이다. 최 회장은 최근 회삿돈 횡령 혐의로 징역 4년의 실형이 확정됐다.
이에 따라 재계 3위인 SK그룹의 경영 공백은 현실화됐다. 벌써부터 몇몇 해외투자 사업에서 차질을 빚고 있다. 미래 성장동력을 발굴하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백의종군 선택=SK그룹은 “최 회장이 회사발전 우선과 도의적인 측면에서 책임을 지고 모든 관계사 등기이사직에서 사임하고자 한다는 뜻을 각 계열사의 이사회에 전달했다”고 4일 밝혔다.
최 회장은 올해 임기가 끝나는 SK㈜와 SK이노베이션 등기이사는 물론 SK하이닉스 등기이사(2015년 임기 만료), SK C&C 등기이사(2016년 임기 만료)에서도 사퇴한다.
최 회장 동생으로 실형 3년6개월이 확정된 최재원 부회장도 SK E&S 대표이사, SK네트웍스 이사회 의장 자리에서 물러나기로 했다.
SK 관계자는 “최 회장이 사퇴 의사를 밝히며 SK가 어떤 어려움에도 흔들리지 않고 수펙스추구협의회를 중심으로 위기를 극복해 달라. 산하 위원회, 각 계열사 최고경영자(CEO)의 리더십으로 전체 구성원이 위기를 극복해 달라고 당부했다”고 전했다.
이로써 최 회장과 최 부회장은 법적으로 SK의 경영과는 무관한 ‘자연인’이 됐고, 대주주 자격만 남았다.
◇수펙스추구협의회로 경영공백 메운다=SK그룹은 오너 공백에 대비한 경영시스템을 이미 구축해뒀다. 개별 계열사는 CEO와 이사회 임원이 중심이 돼 독립경영을 한다. 그룹 내 주요 현안은 6개 주요 계열사 CEO로 구성된 수펙스추구협의회에서 협의해 결정한다. 일종의 ‘집단지도체제’ 방식이다. 최 회장은 2012년 “그룹의 신성장동력 발굴과 해외사업에 집중하겠다”며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에서 물러났고 새 의장으로 당시 김창근 SK케미칼 대표이사가 선임됐었다.
SK는 이런 기조를 유지해 최 회장이 사퇴한 대부분 계열사 등기이사 자리에 후임 사내이사를 선임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사외이사 비중을 확대해 이사회 중심 경영을 강화할 방침이다. 기존 집단지도체제에 추가로 이사회 강화라는 카드를 덧붙여 경영공백이라는 위기를 넘겠다는 것이다. 다만 후임을 비워두는 것에 대해 “결국 최 회장의 향후 경영복귀를 노린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그룹 성장에 차질 빚나=집단지도체제는 한계를 안고 있다. 수천억원에서 수조원에 이르는 돈을 투입해야 하는 대형사업 진출과 해외 수주, 미래 성장동력 투자 등은 전문경영인들로 구성된 수펙스추구협의회에서 풀기가 쉽지 않다.
실제로 최 회장 수감 이후 지난 1년간 SK그룹은 여러 차례 굵직한 투자 기회를 놓치거나 투자에 머뭇거리고 있다. 국내에서도 인수·합병 사업이 잇달아 좌절됐다. SK E&S는 STX에너지 인수(인수금액 약 6000억원)를 위해 의향서까지 제출했지만 최종 단계에서 발을 뺐다. SK텔레콤은 국내 2위 보안업체인 ADT 캡스 인수(사업금액 약 2조원)에서 결정을 차일피일 미루다 기회를 놓쳤다.
해외 사업도 활기를 잃고 있다. SK에너지는 지난해 11월 호주의 유류 공급업체인 유나이티드 페트롤리엄(UP) 지분인수 예비입찰에 참여하려다 포기했다. 태국을 중심축으로 싱가포르 등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벌이고 있는 에너지·자원개발 사업 등도 멈춘 상태다.
노용택 기자 ny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