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사회를 향해-구멍 뚫린 빈곤정책] 최후 보루 ‘기초생활보장제’ 문턱 너무 높다
입력 2014-03-05 01:37
2010년에는 장애 아들을 둔 아버지가 ‘나 때문에 아들이 못 받는 게 있다’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들의 기초생활수급권을 위해 부양 의무자인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거둔 것이다. 2012년에는 거제의 할머니가 사위의 소득 때문에 수급권을 박탈당한 뒤 농약을 마셨다. 청주의 복지시설에서 생활하던 노인은 자녀의 소득 때문에 수급 자격을 박탈당한 뒤 투신했고(2011년), 얼마 뒤에는 치매 아내의 생계를 염려한 남편이 요양병원에서 뛰어내렸다(2012년).
지난달 26일 서울 송파구의 반지하방에서 70만원이 든 봉투와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메모를 남기고 세 모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5일. 3일에는 경기도 광주와 서울 화곡동, 경기도 동두천에서 일가족이 차례로 세상을 등졌다. 이들의 자살은 빈곤 질병 등이 원인이었다는 점에서 사회적 조건이 만들어낸 비관자살로 분류할 수 있다. 경제적으로 한계상황에 내몰린 이들이 벼랑 끝에서 밀려 떨어졌으니 일종의 비자발적 자살인 셈이다.
세 모녀 사건이 벌어진 뒤 정부는 “정보가 부족한 이들이 도움을 요청하지 않아 벌어진 일”이라고 해명했다. 홍보를 충분히 했다면 막을 수 있었던 비극이라는 뜻이다.
사회복지 전문가들은 동의하지 않는다. 허선 순천향대 교수는 “외견상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듯 보이지만 불행히도 현실에서 세 모녀가 필요한 지원을 받았을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며 “정보 부족이 아니라 구조적 사각지대로 인해 발생한 비극”이라고 지적한다.
식당과 편의점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 신분이었던 이들은 고용·산재보험의 안전망 밖에 있었다. 다쳐서 실직했을 때 기댈 곳은 없었다. 빈곤층의 최후 보루인 기초생활보장제는 문턱이 너무 높았다. 현행 시스템이 자격조건에 따라 엄격하게 대상자를 선별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절대빈곤 400만명 중 기초생활수급자는 140만명 안팎을 오르내린다.
문진영 서강대 교수는 “빈곤층 지원 제도에 대한 근본적 성찰과 개선 없이는 같은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영미 문수정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