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재무개선 굼뜬 기업 다각도 압박 … 금감원 ‘동분서주’
입력 2014-03-05 02:33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말 상장사들에 개정된 기업공시 서식을 일괄 송부했다. 이달부터 재무구조개선약정(구조조정으로 기업 부채를 줄이고 수익성을 높이겠다고 채권은행에 약속하는 일) 체결을 거부하는 기업은 회사채 발행 시 증권신고서에 “약정 체결을 미이행, 금융권에서 돈을 꾸기 어려워진 상태”라고 명시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어려운 상황을 맞고서도 구조조정에 게으른 기업은 투자자부터 알아보게 만든다는 강수(强手)였다.
◇“STX와 동양의 교훈”=“8척으로는 부족합니다. 값이 나가는 것으로 2척을 더해서 10척은 팔아야 하지 않을까요.” 지난달 현대상선이 LNG 전용선 사업부를 1조1000억원에 매각 결정한 배경에도 금감원의 당부가 있었다. 현대그룹의 경영정상화 이행 과정을 주시하던 금감원은 지난달 초 현대상선 유창근 사장 등 고위 임원진을 불러 “현대는 값을 너무 높이 받으려 한다. 당장은 아깝게 파는 것 같지만 미래를 생각하면 이 가격이 가장 비쌀 수도 있다”고 설득했다. 10척의 매각 발표는 유 사장이 금감원을 다녀간 뒤 1주일 만에 났다.
금감원은 장기 경기침체 속에서 해운·건설 등 경기민감업종 대기업의 재무구조가 나빠지는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국의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으로 촉발된 신흥국 금융 불안이 국내 실물경제로 옮겨 붙을까 우려하는 것이다. 금융당국과 신용평가업계는 한진·현대·동부그룹 등 3개 그룹의 유동성 확보 과정을 주목하고 있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4일 “최근 동양과 STX가 넘어가는 것을 보면서 시기를 놓치면 사후 대책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배웠다”며 “시장 안정을 위해 금융당국으로서 조정·중재 기능을 적극적으로 발휘하려 한다”고 밝혔다.
금감원이 최근 동부그룹 고위 임원들을 불러 재무구조 개선을 촉구한 것도 이러한 불안감 때문이다. 동부그룹은 지난해 11월 3조원 규모의 유동성 확보를 목표로 하는 대대적 재무구조 개선 방안을 발표했지만, 금융권은 이후 이행이 지지부진하다고 관측한다. 한국기업평가는 “지난해 12월 동부생명 주식을 동부화재에 매각한 것을 제외하면 가시적인 성과가 없다”고 평가했다.
◇은행권엔 “발 빼지 마라”=금감원은 재무구조가 취약한 그룹의 ‘다이어트’ 상태를 점검하는 한편 이들의 채권단과도 긴밀하게 접촉 중이다. 자금조달 여건이 악화되면 구조조정이 어려울 수 있어 상생을 호소하는 것이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그룹의 경영정상화 과정이 원활하지 못하다는 기미가 보이면 은행들은 빌려준 돈을 일거에 빼내려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은행권에서는 현대그룹과 동부그룹 여신에 대해 ‘압박’ 움직임이 있었다. 하지만 금감원은 발 빠르게 시중은행 여신 담당 부행장들을 소집, 자제를 당부했다. “국가 경제에 큰 영향을 주는 그룹”이라는 대승적인 설득도 있었다. 이후 빚 상환 압박은 어느 정도 해소된 상태다.
금감원은 다음 달부터는 중소·중견기업에 대한 신용위험평가를 진행한다. 지난해 하반기 구조조정 대상으로 확정된 중소기업은 112곳이다. 대기업의 자금사정 악화로 협력업체들이 덩달아 힘들어진 결과였다.
금감원 관계자는 “살릴 수 있다고 판단되는 기업은 신속하게 지원하되, 살리기 어려워 보이는 기업은 금융시스템 악영향을 막기 위해 조기에 선을 긋겠다”고 강조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