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아카데미 시상식 생방송 도중 “피자 시키신 분”… 여유와 유머 “이것이 진짜 축제”
입력 2014-03-05 02:33
[친절한 쿡기자] 제86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린 3일(한국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 미국 TV쇼의 인기 진행자이자 시상식의 사회를 맡은 엘런 드제너러스(56)가 객석의 배우들에게 엉뚱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어디 배고픈 사람 없나요?”
시상식 중간에 자신이 주문한 피자의 도착을 알린 드제너러스의 신호였습니다. 무대 뒤에서 피자배달원이 등장한 순간 아카데미 시상식 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운 진풍경이 연출됐습니다. 드제너러스는 배달원과 함께 객석으로 피자를 돌렸습니다. 배우 브래드 피트(51)는 서빙을 거들며 세상에서 가장 잘생긴 웨이터를 자처했죠.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우아하게 객석에 앉은 할리우드의 톱스타들은 앞뒤로 피자를 주고받으며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수상 후보들의 긴장감과 세계의 이목이 쏠린 압박감으로 경직될 수 있었던 시상식을 축제로 바꾼 드제너러스의 재치가 빛을 발한 순간이었습니다.
드제너러스는 “피자 값을 지불할 사람이 없느냐. 세계인이 보고 있다”고 제안했고, 배우들은 하나둘씩 지갑을 열어 600달러를 모았습니다. 드제너러스는 자신의 400달러를 얹어 1000달러(약 107만원)를 배달원에게 건넸죠. 세계에서 유일하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피자 값을 받은 배달원은 일약 스타덤에 올랐습니다.
드제너러스의 독특한 진행은 이게 끝이 아닙니다. 시상식 도중 배우들과 촬영한 사진을 자신의 트위터에 올리고 “리트윗(트위터 재배포)이 얼마나 되는지 보자”고 제안했습니다. 지구촌 곳곳으로 전파를 타고 나가는 생방송을 활용한 실험이었죠. 드제너러스의 사진은 순식간에 리트윗 100만건을 돌파했습니다. 이에 따른 현상인지 확인되지 않았지만 같은 시간 불안정해진 트위터 서버에 세계 네티즌은 “드제너러스의 효과”라며 경탄했습니다.
드제너러스의 진행 방식은 우리나라 네티즌에게도 작지 않은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영화제와 방송사의 연말 시상식 때마다 천편일률적인 공연과 진행으로 피로감이 쌓인 우리나라 네티즌들은 소박하지만 재치와 여유가 넘치고 파괴력까지 갖춘 아카데미 시상식을 부러움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연말만 되면 아무리 채널을 돌려도 아이돌그룹의 공연만 나오는 우리나라 방송사 시상식과 차원이 다르다” “개그맨 진행자가 건네는 몇 마디의 농담을 제외하면 지루해서 도저히 볼 수 없는 우리나라 영화제에 비하면 아카데미시상식은 블록버스터 수준”이라는 글이 넘쳤습니다. 아카데미 시상식의 권위와 할리우드 톱스타의 인기를 감안해도 네티즌들의 조언을 새겨들을 만합니다.
드제너러스가 시상식장에서 촬영한 사진은 4일 현재 리트윗 300만건을 훌쩍 넘겼습니다. 리트윗 횟수는 여전히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죠. 불과 1000달러와 트위터 계정 한 개로 세계인에게 긴 여운을 남긴 드제너러스의 ‘마법’을 올해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을까요.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