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박병권] 여인천하
입력 2014-03-05 01:35
흥선대원군은 경복궁 경회루에서 며느리가 될 민씨 성을 가진 처녀를 테스트했다. 시아버지가 될지도 모르는 대원군 앞에 그녀는 머리를 푹 숙이고 앉아 있었다. 이때 그녀에게 “이 누각의 기둥이 몇 개냐”는 질문이 날아들었다. 어찌할까. 그녀는 물 위에 비친 누각 기둥의 일부를 곁눈으로 보고 정답을 알아맞혔다고 한다. 김동인의 소설 ‘운현궁의 봄’에 나오는 얘기다.
월탄 박종화의 역사소설 ‘여인천하’는 조선시대 여성 권력의 진수를 보여준다. 1965년 발표된 이 소설은 중종반정 이후 일어난 권력암투를 실감나게 그리고 있다. 중종의 계비(繼妃)로 명종 즉위 후 수렴청정한 문정왕후와 여러 후궁, 정난정 등의 권모술수가 남자 뺨칠 정도다. 이 외에도 인수대비, 장록수, 장희빈 등 한 시대를 쥐락펴락한 조선 여인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여성이 권력을 잡는다고 해서 문제될 것은 없다. 다만 역사가들은 여성 권력자들이 국방 문제에 취약한 약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 청 말기 서태후는 의화단의 반제국주의 투쟁이 고조되자 이를 틈타 열강에 선전포고를 했지만 8개국 연합군의 침입으로 시안으로 도망갔다. 그렇지만 중국 최초의 여자 황제인 당 측천무후는 태종의 ‘정관의 치’에 버금간다는 ‘무주의 치’라는 업적을 쌓기도 했다.
여성 권력의 전성시대는 동서로 갈린 후인 5세기 중반 로마일 것이다. 425년 서로마 황제로 등극한 발렌티니아누스 3세는 나이가 어려 어머니인 갈라 플라키디아가 전권을 행사했다. 동로마는 여성들이 더욱 극성이었다. 테오도시우스 1세의 장남인 동로마 황제 아르카디우스 시절에는 황후 에우독시아가 득세했다. 그가 죽자 대를 이은 아들 테오도시우스 2세 시절에는 황제의 누나인 풀케리아가 전권을 휘둘렀다.
로마가 망한 원인 가운데 하나는 군사령관을 겸한 황제가 말기로 갈수록 전선에 나가지 않은데서 비롯됐다. 제국의 영토를 방위하는 것이 황제의 첫 번째 임무일진대 군을 모르니 속수무책으로 야만족에게 당할 수밖에 더 있었겠나. 여성 권력자라도 군을 장악한다면 통치권 행사에 아무 지장이 없다. 포클랜드 전쟁을 승리로 이끈 대처 전 영국 총리가 단적인 예다.
우크라이나의 티모셴코 전 총리가 세계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미모에다 결손가정 출신인데도 남다른 노력으로 총리까지 올랐던 경력을 가진 그녀가 과연 푸틴의 잔인무도한 마초이즘을 이길 수 있을지 여부가 주목된다. 관건은 바로 군대 운용 능력이 아닐까 싶다.
박병권 논설위원 bk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