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터뷰] 선거 민심 짚어 온 노규형 리서치앤리서치 대표 “바람 미리 읽는 토종 방법론 개발해야”

입력 2014-03-05 01:31


노규형(61) 리서치앤리서치 대표는 여론조사란 현미경을 통해 민심의 깊은 흐름까지 속속 짚어낸다. 0.0001의 오차까지 챙겨보는 직업적 특성이 몸에 평소 배어 있다. 국내 조사업계에서 그는 자로 잰 듯한 정교함에 치밀함까지 갖춘 ‘깐깐한 CEO’로 통한다. 지난달 26일 낮 서울 신반포로 리서치앤리서치빌딩에서 어렵사리 그를 만났다. 당초 예상과 달리 그의 첫 인상은 퍽 소탈했다. 30년간 대선과 총선, 지자체 선거 때마다 변덕스러운 민심의 흐름을 지켜보았던 탓일까. 2시간 넘는 인터뷰 내내 기자의 질문 하나 하나에 고민하며 답하고, 어떤 대목에서는 수정하며 조심스러운 답변을 이어갔다.

-여론조사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현명한 사람은 미리 결과를 예측하고 이에 대응하게 한다. 정당이나 후보는 결과를 예측하여 자원을 더 투입하거나 공감을 못 주는 정책은 수정할 수 있다. ‘돈은 묶고, 입은 푼다’고 하지 않나. 당이나 후보에 대한 판단의 근거가 된다. 후보에게 선거에 대한 사전정보를 제공하고 유권자의 판단에 도움을 준다. 지금은 당선 가능성이 낮은 선거에 뛰어드는 사람이 크게 줄었다. 여론조사가 가이드라인을 해주기 때문이다.

1987년 YS와 DJ는 여론조사라는 도구가 없어 단일화를 못했다. 지금은 여론조사가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 실례로 지난 2002년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 당시 여론조사라는 도구가 있어서 후보를 확정지을 수 있었다. 의사결정의 도구로 활용되면 불필요한 낭비나 소모적인 노력을 줄일 수 있다. 이것이 여론조사의 순기능이다. 정치가 중요하다. 우리보다 잘살던 필리핀, 심지어 북한을 보더라도 정치가 잘못되어 저렇게 되었다. 여론조사가 정치지도자의 판단에 기여해 정치가 발전하면 나라가 발전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1980년대에 대선 여론조사를 했는데.

“1987년 민주화항쟁이 벌어졌다. 한국사회는 암울했던 시기였다. 6월항쟁 당시 집권당이 직선제 개헌 수용 여부로 고민할 때였다. 당시 사회개발연구소에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그때만 해도 설문지 1만부 정도 보내는 우편조사였다. 조사 결과 민심은 직선제 개헌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으로 결론이 나왔다. 여론조사 결과를 그대로 민정당 대표실에 전했다. 노태우 대표의 정세 판단에 도움이 되었다고 들었다. 때마침 김수환 추기경이 ‘아무리 구름에 깜깜하게 갇혀 있어도 해가 저기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희망을 버리지 말자’는 말씀을 하셨다. 이 기사를 읽고 ‘직선제 개헌을 받아들여야 하는데’라고 생각했다. 며칠 후 6·29선언이 나왔다. 참으로 감명 깊고 뜻 깊었다. 한국에서 권위주의 정부가 민심에 따라 스스로 변화한 사례였다. 한국 현대사에서 모멘텀이 되었던 그 당시 ‘나도 작은 역할을 했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내 조사인생의 큰 보람으로 기억한다.”

-우리나라에서 여론조사가 처음 실시된 시기는.

“문헌을 보면 세종대왕 때인 1430년에 공법(貢法)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함경도에서 전라도까지 전국 17만명을 조사했다. 최초로 전국 단위 면접조사인 셈이다. 가구방문 면접조사로는 가장 오래된 여론조사가 아닌가 한다. 당시 세종대왕은 실방가부이문(悉訪可否以聞)하라고 하셨다. 즉 ‘모두를 방문해서 가부를 들으라’는 뜻이다. 여론조사는 묻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올바로 듣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오늘날 정책결정자나 여론조사가들이 새겨들어야 할 지혜가 들어 있다.

과학적인 여론조사는 1960년대에 본격화됐다. 한국의 인구제도, 특히 산아제한제도를 연구하면서 과학적인 조사방법론을 도입했다. 미국의 학자들이 잇따라 방한했고, 국내의 사회학자들도 많이 참여했다. 행정고시 등 국가고시에서 조사방법론을 시험보는 사람들도 많았다. 면접원이 가구를 방문하는 면접조사는 1990년대까지 주요 조사방법이었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가 틀린다는 비판도 있다.

“면접조사가 갈수록 어려워진다. 아파트마다 경비원들이 있다. 또 전체 가구의 25%가 1인 독거세대다. 낮에는 사람이 없다. 전화조사도 어려워졌다. 전화번호를 공개하는 집전화 없이 휴대폰만 가진 사람도 많아졌다. 자택전화가 있는 가구는 전체의 40%밖에 안 된다. 자택전화만 할 경우 포함오류(coverage error)가 발생한다. 그래서 자택전화와 휴대폰을 혼합한 ‘듀얼 랜덤 샘플링(Dual Random Sampling)’의 이중표집 방법을 사용한다. 그런데 이것도 쉽지 않다. 무작위 생성된 전화번호로 조사하면 보통 자택전화는 30%, 휴대폰은 38%가 결번이다. 비용과 시간이 그만큼 늘어난다. 휴대폰은 지역정보가 없다. 가령 구청장 여론조사를 하는데 타지역 사람들에게 전화를 거는 수가 있다. 조사기간에 한해 특정 지역 내 전화번호에 ‘사이버번호’를 한시 부여하는 방안이 추진되기도 했다. 개인 프라이버시도 보장하고 여론조사의 정확도를 높이는 방안이었다. 입법이 추진되다 흐지부지되었다. 일부 기관들이 지역 패널을 갖고는 있지만 여전히 만족스럽지 못하다. 아울러 비표본 오차도 없어야 한다. 설문 구성은 물론 코딩과 펀칭 에러까지 얼마나 철저히 관리하느냐에 달려 있다.”

-인터넷 서베이와 ARS 조사의 신뢰성은.

“인터넷 서베이의 경우 응답 자체에 포함오류가 매우 크다. 사용자와 비사용자 때문에 모집단의 대표성이 떨어진다. 따라서 선거 관련 여론조사에는 잘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마케팅 조사에서 많이 이용된다. ARS 조사 역시 응답자를 확인할 수 없다. 응답자가 여자인데 남자라 하고, 60대인데도 20대라고 해도 전혀 확인이 안 된다. 기계적 장치이니 응답률도 대단히 낮다. 얼마전 조사통계학회에서 ARS 조사가 과학적이지 않다는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여론조사는 마치 건강검진과도 같다. 몸에 대한 정확한 건강 진단을 하려면 좋은 병원과 권위 있는 의사, 그리고 과학적인 검진도구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간단히 혈액검사만 하고 건강을 진단한다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여론조사에서 응답률이 너무 낮던데.

“높은 응답률이 반드시 조사의 품질을 보증하지는 않는다. 이론적으로는 100% 응답률이 가장 정확하다. 하지만 인구센서스에서도 기대하기 어렵다. 다만 표본이 얼마나 모집단을 반영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3개월간 한 사람을 상대로 10회 이상 조사한다 해도 응답률은 65%가 안 된다. 시간이 촉박한 선거여론조사에서는 현실적으로 인구사회학적 변인에 맞춰 할당표집 방법을 할 수밖에 없다. 이것도 쉽지는 않다. 저녁 6∼7시면 노년층 할당 목표는 대부분 차버리지만 대도시의 젊은층은 무척 어렵다. 노년층 할당을 마친 면접원들은 나이드신 분들이 전화를 받으면 끊게 되는데 ‘나이들었다고 설문도 안 하느냐’는 노인들의 항의가 쏟아진다. 어느 경우든 표집오차를 최소화해야 조사의 신뢰성과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다.

자꾸 바뀌는 선거법도 조사를 어렵게 한다. 최근 사전투표제가 도입된 후 투표율도 크게 변동한다. 응답률이 낮아지면 비용과 시간, 노력이 더 많이 든다. 하루 걸릴 게 이틀 걸리고, 면접원 인원도 10명에서 20명으로 늘어나게 된다.”

-미국 등 외국 여론조사가 더 정확하다는 지적도 있는데.

“미국 여론조사 전문가 네이트 실버는 저서 ‘시그널 앤드 노이즈(The Signal and Noise)’에서 지난 대선을 분석해 보니 전통적인 여론조사가 잘 맞지 않았다고 기술했다. 미국 등 선진국의 여론조사가 잘 맞는다는 것은 옛날 이야기다. 외국도 우리와 똑같이 조사 환경이 많이 어려워졌다. 응답 거부도 높고 자택전화 및 휴대폰의 커버리지도 떨어진다. 여론조사 결과가 잘 맞지 않기는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다.

지난 2010년 지방선거에서 서울의 경우 오세훈 후보가 한명숙 후보에게 크게 이길 것이라 예측됐지만 근소하게 이겼다. 경기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전화번호부에 등재된 집전화만을 이용한 것이 문제였다. 이후 이 부분이 많이 보완됐다. 그래서 2012년 대선은 상당히 정확했다. 출구조사는 투표마감 직후에 개표 결과를 사전에 맞히는 것이다. 역시 정확했다. 다만 총선은 전국 243개 지역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 오차가 더 발생한다.”

-마케팅 분야에서 여론조사의 유용성은.

“기업들이 소비자 생각을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소비자의 의식과 동기, 미래 시장 트렌드는 기업의 주요 의사결정에 큰 영향을 준다. 마케팅 전문가 필립 코틀러는 ‘마케팅 조사야말로 모든 기업 활동의 기본’이라고 했다. 선진국일수록 마케팅 조사업이 굉장히 발달해 있다. 반면 우리는 너무 낮다. 기업의 비합리적인 의사결정이 아직도 많기 때문이다. 대기업들만 시장 조사를 한다. 국내 기업 중 99%가 중소기업인데도 그 가운데 시장조사하는 기업은 0.01%에도 미치지 못한다. 수많은 기업이 R&D 투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마케팅 조사는 하지 않는다. 그러니 물건만 만들었다 시장 변화나 소비자 니즈를 모르고, 적정가격도 못 정하는 경우가 많다. 마케팅 조사는 비즈니스를 도와주는 지식서비스산업이다. 지식서비스산업은 창조경제나 경제혁신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제조업 중심의 한국에서는 마케팅 조사 등 지식서비스산업이 무척 낙후되어 있다.”

-지식서비스산업의 경쟁력 강화 방안은.

“외국 기업들은 시장진출 시 법률 회계 조사업 등 지식서비스 기업이 함께 간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국내가 아닌 외국계 기업들과 같이 간다. 국내 지식서비스산업이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내 외국계 조사회사들은 100% 자신들이 지분을 가진 지사를 두고 막강한 자금력으로 시장을 점하고 있다. 토종 회사들이 키운 인력은 1∼2년 지나면 외국계 조사회사로 떠난다. 외국계로 우수 인력이 몰리는 ‘깔때기 현상’이 발생한다. 이제 우리 지식서비스산업도 세계 수준으로 가야 한다. 아직도 세계에 내놓을 토종 마케팅 이론이나 조사방법론이 없다. 일본의 인티지나 비디오리서치는 토종이면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외국 지식서비스 기업들과 당당히 겨뤄 세계 최고 브랜드 조사기관이 되었다. 국내 조사업계도 인력을 양성하고, 학계도 토종 이론을 개발해야 한다. 아직까지 미국식 모델만 이야기하는 것은 지적 사대주의(事大主義)나 다름없다.”

-여론조사 CEO로서 바람직한 자세는.

“평소 명경지수(明鏡止水)를 생각한다. 여론조사기관은 민심을 편견없이 담아내는 깨끗한 물과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 나도 사람인데 선호도가 없을 수 없지만. 명경지수로 객관성을 지킨다. 가끔 감(感)을 이야기하는 이들이 있다. 여론조사는 ‘점쟁이’를 당할 수는 없다. 여론조사는 점쟁이가 아니다. 정확한 여론조사는 사진과 같이 현재를 그대로 잘 찍어내야 한다. 현 상황도 곧 변할 수 있다. 사진처럼 마지막 순간에 찍어내야 현상에 가장 가깝다. 1주일 전 결과도 뒤집힐 수 있다.

영화 ‘관상’을 보니 이런 말이 나오더라. ‘파도를 일으키는 것은 바람이다. 나는 파도를 보았으나 바람은 보지 못했다.’ 여론조사는 파도를 보고 ‘보이지 않는 바람’을 보려는 것과 비슷하다. 항상 민심이라고 하는, ‘국민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한다. 현명한 사람은 여론을 판단한다. ‘물이 배를 띄우지만 뒤집을 수도 있다’고 하지 않나. 물이 곧 민심이다. 여론조사는 민심을 아는 도구이며 사회적 공기(公器)라고 생각한다.”

노규형은… 87년 6월 항쟁 때 여론조사로 국민 목소리 알려

1980년대 국내에 첨단 조사기법을 선거 현장에 도입한 리서치전문가. 경기고와 서울대를 졸업한 뒤 뉴욕주립대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5년 귀국 후 민정당 사회개발연구소 재직 당시 선거 여론조사를 진두지휘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당시 직선제 개헌이 필요하다는 여론조사 결과로 처음 민심을 전한 당사자.

지난 1989년 여론조사기관 리서치앤리서치(Research & Research)를 창립했다. 지난 2000년 총선 당시 최초로 전국 243개 지역구에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1992년부터 매년 대통령 직무평가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설문 항목의 디테일을 지적한 대선후보와 치열한 논쟁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원칙을 관철시킨 강직형 스타일.

지난 2002년 노무현 정몽준 후보 간 대선후보 단일화를 결정하는 여론조사도 진두지휘했다. 25년간 캐티(CATI) 등 세계 수준의 여론조사 관련 소프트웨어를 개발해오고 있다. 청년 인턴 120명을 양성하는 마켓 리서처 양성 과정을 추진 중이다. 글로벌 브랜드의 여론조사 기관으로 성장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외국의 여론조사 및 마케팅 전문서 7권을 국내에 번역 소개해 왔다. 2006년부터 2008년까지 한국마케팅여론조사협회장을 역임했다. ROTC 15기 출신.

김경호 논설위원 kyung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