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보지 아니하고, 듣지 아니하나니

입력 2014-03-05 01:35


에스겔 12장 1∼16절

영화 ‘해운대’, 노아의 홍수, 히로시마의 원자폭탄 투하. 이 세 가지 사건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예고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공통점은 모두 그 징조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예고를 믿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도 같은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2절).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들을 사랑하시기에 징조를 보여주셨고 에스겔에게 행동으로 예언하라고 하십니다(3∼6절). 이삿짐을 싸서 끌려가고 포로 되어 가고 성벽을 뚫고 옮기고 캄캄한 때에 얼굴을 가리우고 땅을 보지 말라는 말씀에 순종합니다. 이상한 행동을 본 이스라엘 백성들은 “저거 뭐하는 거야” “아니, 선지자님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왜 이러세요”라고 묻습니다. 에스겔은 기다렸다는 듯 하나님의 말씀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전합니다. “바로 당신들을 위한 행동이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곧 하나님의 심판이 임합니다. 회개하십시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설마 우리 때에 그런 일이 있겠는가. 아마 먼 훗날 있을 거야’라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27절). 결국 그들은 닥쳐오는 심판을 면할 수 없었습니다.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반응과 같지 않습니까? 종말의 때를 사는 우리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영적인 분별력입니다. 영적으로 무감각해지면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며, 우리 삶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전혀 느끼지 못합니다.

필립 얀시는 한센병의 가장 심각한 증상이 무감각인데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영적 한센병에 걸려 있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나는 영적으로 무감각합니까. 아니면 영적으로 민감한 분별력을 가지고 있습니까. 영적으로 무감각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민감한 영적 분별력을 가지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첫째, 자기를 더럽히지 않으려는 열정이 필요합니다. 다니엘은 이방 땅에서 자신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뜻을 정하고 담대히 나아갔습니다(단1:8). 바리새인들에 대해 예수님께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책망은 하셨지만 하나님 앞에 바로 서기 위한 그들의 열심은 본받으라고 하셨습니다(마5:20). 다른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정말 그리스도인답다”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 철저히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노아는 주위 사람들의 조롱과 비난에도 불구하고 철저히 말씀에 순종해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말씀에 순종해 방주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말씀에 순종해 방주에서 나왔습니다.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창6:22, 7:5). 결국 말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말씀에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길은 말씀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셋째, 경건에 열심을 내어야 합니다. 경건을 따르지 않으면 ①교만해져서 아무것도 모르고 ②병이 들어서 논쟁과 말다툼을 일삼게 되고 ③시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의심이 생기며 ④마음이 썩고 진리를 잃어버리고 ⑤경건을 이득의 수단으로 생각해 끊임없이 분쟁하게 됩니다(딤전6:2∼5, 요9:31, 딤전4:7∼8).

항상 어떻게 하면 경건하게 살까, 어떻게 하면 거룩하게 살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주님의 때가 멀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영적인 분별력을 가지고 깨어서 봐야 할 것을 제대로 보아야 합니다. 들어야 할 것을 제대로 들어야 합니다.

정준 서울 망원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