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홍렬 (13·끝) “평생 부족한 종과 함께 한 하나님 감사합니다”

입력 2014-03-05 02:32


총회장을 맡기 전 담임목사직을 사임했고 임기를 마친 뒤에는 어떤 역할도 약속된 게 없었다.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주변의 권유를 뿌리치지 못해 총회장 선거에 다시 나선 것이다.

결과는 낙선이었다. 내게 잘 어울리지 않은 무거운 직무를 모두 벗어버렸다는 홀가분함도 있었지만 생계가 문제였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총회장을 지냈기 때문에 정년까지 19년이나 남아있었다. 담임목사 청빙 이야기도 오갔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선택할 수 있는 다른 길이 없었다. 고향 마을까지 자동차로 20분 정도 걸리는 충북 제천으로 내려가 교회를 개척하기로 했다. 필자가 시무했던 남부루터교회를 다니던 최해련 윤영은 권사님, 지영일 장로님 내외분을 비롯한 여러 분들이 찾아와 눈물을 글썽이며 배웅해주셨다.

2006년 1월 1일 아내와 단둘이 예배를 드리고 교회 개척을 준비했다. 작은 교단의 개척교회가 살아남기는 어려운 환경이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고 불면증까지 왔다.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해 이대로 포기할지 고민하는데 이번에는 아내가 반대하고 나섰다. “훨씬 더 힘들 때도 잘 이겨냈는데 제대로 시작도 하지 못하고 여기서 그만둘 수는 없지 않느냐”고 했다.

아내가 잠든 뒤 거실 벽에 붙여 놓은 십자가 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하나님, 이젠 더 이상 갈 곳도, 오라는 곳도 없습니다. 이제 어찌해야 합니까.” 나도 모르게 흘러내리는 눈물을 훔치며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하나님께선 부족한 종의 눈물을 안타깝게 보신 듯했다. 얼마 뒤 동생인 이금렬 권사 가족이 함께 예배를 드리게 됐다. 다른 가족과 성도들도 교회 개척에 힘을 보탰고 총회 본부의 도움을 받아 제천시 세명로의 세명대학교 정문 앞에 ‘푸른하늘루터교회’를 개척했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소망을 품고 있는 교회가 되자’는 뜻에서 교회 이름을 지었다.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사역 이외에 모든 욕심을 내려놓고 희망과 용기를 주제로 설교하는 데 온힘을 쏟았다. 복음 전파에만 집중하다 보니 어느새 목회 스트레스가 줄어들었다.

대학생뿐 아니라 대학 교수, 다른 지역에 사는 주민들도 출석하기 시작하는 등 교회는 조금씩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언제나 푸른 하늘’이라는 선교 책자를 만들어 제천 시내 곳곳에서 나눠드렸다. 8년이 지난 뒤 교회는 완전히 자립했다. 안정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게 됐다. 이렇게 감사하고 행복한 목회가 또 어디에 있을까.

지난해 12월 총회 실행위원회는 필자를 다시 서울로 올라오도록 했다. 아끼는 동료이자 친구인 김철환 기독교한국루터회 총회장이 한국베델성서연구원을 맡아달라며 원장 임명장을 준 것이다. 지난 1월 10여년 만에 총회 사무실로 출근해 보니 유영탁, 손경애, 최태훈 등 반가운 사람들이 여전히 총회 업무를 맡아보고 있었다.

필자는 지금 한국베델성서연구원 사무실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아마도 이곳이 은퇴 전 마지막 사역지가 될 것 같다. 양떼들을 섬기던 그 마음으로 한국교회의 모든 목사님과 성도님들을 섬기겠다는 다짐을 새롭게 하고 있다. 물론 평생을 부족한 종과 함께해 주신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제 긴 이야기를 마칠 때다. 목회 여정에서 만났던 수많은 분들께 다시 한 번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보잘 것 없는 평범한 이야기를 끝까지 인내하며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어머니 같은, 나의 사랑하는 교단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아멘.

정리=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