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장애 비관 일가족 자살 잇따라… 구멍 숭숭 뚫린 사회안전망

입력 2014-03-04 03:31 수정 2014-03-04 09:38

집세와 공과금이 밀리자 동반 자살을 택한 서울 송파구 ‘세 모녀’에 이어 생활고와 힘겨운 처지를 견디지 못해 함께 목숨을 끊는 일가족이 잇따르고 있다. 구멍 뚫린 사회안전망을 시급히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3일 경기도 광주의 다세대 주택에서 이모(44)씨가 지체장애를 갖고 있던 딸(13), 아들(4)과 숨진 채 발견됐다. 이씨는 남매와 함께 작은 방에 누워 숨져 있었다. 방문과 창문에는 유리테이프로 문틈을 막은 흔적이 있고, 방안에서 다 타버린 번개탄 5개와 소주병 2개가 발견됐다. 경찰 관계자는 “이씨가 부인과 이혼한 뒤 장애가 있는 딸을 키우다 재혼했는데 가정불화가 깊어졌던 듯하다”고 말했다.

2일에도 서울 화곡동 다세대 주택에서 생활고와 병마에 시달리던 안모(57)씨가 아내 이모(55)씨와 함께 숨진 채 발견됐다. 안씨 내외는 안방 침대에 나란히 누운 상태로 숨을 거뒀고 방에는 연탄불을 피운 흔적이 남아 있었다.

현장에서 발견된 유서에는 딸(21)에게 “먼저 가서 미안하다. 다음 생에도 부모와 자식으로 만나 행복하게 살자”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택시기사로 일했던 안씨는 최근 간암 말기 판정을 받은 뒤 극심한 생활고를 겪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딸은 경찰에서 “부모님이 아버지 암 치료비 때문에 힘들어했다”고 진술했다.

경기도 동두천에서도 30대 주부가 네 살배기 아들을 안고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숨졌다. 동두천경찰서는 2일 오후 7시45분쯤 동두천의 한 아파트 화단에서 윤모(37)씨와 아들(4)이 숨진 채 발견됐다고 밝혔다. 윤씨의 옷에서는 시아버지 명의의 세금 고지서에 ‘이렇게 죽게 돼서 미안하다’고 적은 메모가 발견됐다.

윤씨는 4년 전 재혼해 함께 숨진 아들을 낳았다. 그동안 아들은 경기도 포천 시댁에 맡긴 채 남편이 데려온 딸과 함께 원룸에 살고 있었다. 전업주부였던 그는 남편의 수입으로 생활을 꾸렸으나 형편이 좋지 않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윤씨의 아들이 네 살이 되도록 말을 잘 못하고 기저귀를 착용하는 등 성장이 더뎠으며 윤씨가 이를 어려운 가정형편 탓으로 생각해 왔다는 유족 진술을 확보했다. 경찰 관계자는 “어려운 형편에서 생활하던 윤씨가 아들에 대한 고민이 커지면서 우울증이 심해져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북대 사회학과 노진철 교수는 “양극화 현상이 극심해지면서 충분한 소득을 확보할 수 없는 사람들이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하다 자포자기해 자살하는 경우가 심각한 수준으로 늘고 있다”며 “이들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주지 못하는 것은 우리 사회안전망이 매우 약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안상훈 교수도 “우리 사회에 긴급 복지시스템이 있지만 그 존재나 이용하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며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위해 원스톱 복지센터를 만들고 기다리는 대신 찾아가서 도움을 주는 시스템을 하루빨리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성은 박요진 김유나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