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낸 기부금 사용처 내가 정한다… 공익신탁제 1년 뒤 시행
입력 2014-03-04 01:37
구세군 냄비에 돈을 넣을 땐 ‘좋은 곳에 쓰이겠지’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품게 된다. 하지만 그 돈이 우리 동네에 있는 불우한 이웃에게 쓰이는지 알 길은 없다. 기부금을 자신의 뜻에 맞게 쓰려면 장학재단 같은 공익법인을 설립해야만 한다. 하지만 법인을 설립하려면 사무실을 마련하고 이사회와 감사도 운영해야 해 가욋돈이 든다. 최소 수십억원대 자산가가 아니면 엄두를 못 낸다. 법인 설립 허가나 등기를 갖추는데도 수개월이 걸린다.
법무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마련된 공익신탁법 제정안이 지난달 2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1년 후 시행된다고 3일 밝혔다. 공익신탁은 펀드 투자처럼 재산의 관리·운용·처분 등을 위탁자에게 맡기되 사용목적을 공익으로 제한한 제도다.
공익신탁은 수탁자와 계약만 체결하면 된다. 평소 거래하던 은행과 사전 협의만 된다면 “1억원을 우리 동네 고등학교에 다니는 소년·소녀 가장에게 장학금으로 지급해 달라”고 신탁을 설정하는 식이다. 수탁자가 된 은행은 자산을 관리·운용하며 장학금을 지급해 기부자는 적은 비용으로도 자신이 원하는 장학금을 지급할 수 있다.
위탁자와 수탁자는 법인이든 개인이든 누구나 될 수 있다. 미국의 ‘빌 앤 멜린다 게이츠’ 재단처럼 유명인이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공익신탁을 운용할 수도 있다. 일정한 요건만 갖추면 3개월 안에 법무부 장관이 공익신탁을 인가해 준다. 신탁재산 사용 목적도 뚜렷해 학교 재단에 장학금으로 건넨 돈이 건물 신축비로 사용되는 일도 방지할 수 있다.
법무부 장관이 직접 사업계획서 등 공익신탁 활동내역을 인터넷에 공시해 기부한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 하나하나 확인할 수 있다. 수탁자는 매년 법무부 검사나 외부감사도 받아야 한다. 공익신탁 내역이 공개돼 같은 뜻을 품은 사람들도 쉽게 모을 수 있다.
수탁자는 신탁재산을 국채나 예금 등 안전자산으로만 운용해야 한다. 부동산 투기나 고리 대부로 자산을 운용할 수는 없다. 신탁재산 운용으로 얻은 소득의 70%는 공익사업에만 사용해야 한다. 공익신탁이 종료될 경우 잔여재산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의 다른 공익신탁에 귀속돼 증여나 상속으로 사용될 수도 없다. 공익신탁을 하면 위탁자는 15%의 세액공제 혜택을, 수탁자는 신탁운용 수익금 비과세 혜택을 받는다.
현행 신탁법에도 공익신탁 제도가 있지만 장학금이나 사회복지 등 목적이 다양할 경우 부처별로 허가와 감독을 받아야 하는 등 요건이 복잡해 활성화되지 못했다.
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