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많이 피우네… 담뱃불 좀 꺼라”… ‘묻지마 인질범’ 꾸짖은 女인질
입력 2014-03-04 02:34
“저리 가요, 냄새나.”
인질극이 벌어진 지난 1일 밤 서울 압구정역 인근 빵집에서 인질범 김모(57)씨와 협상을 벌이던 경찰관들은 순간적으로 귀를 의심했다. 김씨가 연이어 담배를 피우자 인질로 잡혀 있던 A씨(48·여)가 김씨를 ‘구박’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당시 경찰관들은 평소 피우지 않던 담배를 일부러 김씨에게서 얻어 함께 피우는 등 김씨를 진정시키기 위해 혼신을 다하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A씨는 김씨를 향해 “담배 진짜 많이 피우네” “그것(담뱃불) 좀 꺼라”라며 거침없이 꾸짖었고, 김씨는 별다른 반발 없이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A씨가 김씨를 자극하는 말을 꽤 많이 해서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김씨가 반응을 보이지 않아 놀랐다”며 “적극적으로 얘기하는 A씨를 보면서 김씨가 오히려 대화에 집중하게 된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A씨는 약 3시간 만에 풀려난 뒤에도 병원에 데려다주겠다는 경찰을 뿌리치고 “그냥 집에서 쉬고 싶다”며 귀가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이 형식은 인질극이지만 본질은 인질극으로 보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건국대 이웅혁 교수는 “큰 틀에선 A씨가 인질로 보이지만 내면을 뜯어보면 인질이 아닌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인질극이라면 인질을 위협하며 구체적인 요구를 내놓아야 하는데 김씨는 자신의 불쾌한 상황을 표현하는 수단으로만 A씨를 이용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김씨에게 불만스럽고 정상적이지 않은 감정상태가 있었는데 담배도 피우고 뭔가 대화도 해가며 시간이 경과하면서 그 감정이 누그러진 것 같다”며 “인질 협상에서 시간을 벌고 끄는 게 핵심이라면 A씨의 대처가 다소 도움이 됐을 수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3일 김씨의 정신병력을 확인하기 위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치료 기록을 조회했다. 경찰 관계자는 “김씨가 경찰서로 호송된 뒤에는 돌발행동 없이 조사에 응했다”고 말했다. 다만 범행 동기에 대해선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중앙지법은 “사안이 중대하다”며 김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박세환 김유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