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 불거졌다 잠잠해진 듯하던 신흥국 위기설이 우크라이나 사태로 재점화되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갈등으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화폐가치가 동반 폭락한 데 이어 신흥시장 전반에 대한 투자심리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우크라이나 위기에 러시아 통화가치 급락=3일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의 외화보유액은 지난 1월 말 기준으로 178억 달러에 불과하다. 이는 2006년 이후 최저 수준이다. 외화보유액 대비 단기 외채 비율도 지난해 9월 말 289%로 2009년 148%의 배로 확대됐다. 국제 3대 신용평가사가 매긴 우크라이나 신용등급은 CCC, Caa2 등이며 전망도 ‘부정적’이다. 우크라이나 경제 상태가 이미 디폴트(채무불이행) 단계에 근접해 있는 셈이다. 국가부도 위험도를 보여주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지난달 20일 13.29%까지 치솟았다. 우크라이나 과도정부가 디폴트 위기를 피하기 위해 필요한 자금은 내년까지 약 250억 달러다.
전문가들은 오히려 더 큰 문제는 러시아라고 지적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러시아 금융시장은 이미 급격히 흔들리고 있다. 이날 러시아 증시 종합지수는 장중 한때 13.0% 이상 폭락, 2009년 이후 최대 낙폭을 기록했으며 루블화 가치도 달러당 36.3855루블로 1.43% 급락했다. 시장 불안 우려로 외국자본이 이탈할 움직임을 보이자 러시아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현행 5.50%에서 7.00%로 인상하는 긴급조치를 내렸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러시아 경제는 성장률 악화에다 원자재 가격 하락 등으로 이미 우려스러운 상황이었다”면서 “여기에 우크라이나 사태가 겹치니 위기감이 커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금융불안은 유럽시장에도 불똥이 튀었다. 독일 DAX가 이날 밤 11시 현재(한국시간) 3%대의 급락세를 보이는 등 대부분 국가의 주가지수가 하락했다.
◇신흥시장 불안↑…안전자산 선호↑=러시아를 필두로 한 위기감은 신흥시장 전반에 대한 투자심리를 급격히 위축시키고 있다. 당장 터키 리라화, 폴란드 즐로티화, 남아프리카공화국 랜드화 등이 이날 일제히 하락세를 보이며 불안감을 반영했다. 안남기·최성락 국제금융센터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태국, 베네수엘라 등에서도 정치 불안이 지속하고 있다”면서 “주요 신흥국 권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불안 요소가 있어 신흥국 전반에 대한 투자심리 악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졌다”고 지적했다.
위기감이 빠르게 확산되면 세계 금융시장 전반에 안전자산 선호 심리도 높아진다. 대표적 안전자산인 달러화·엔화·금은이 이날 모두 상승하며 강세를 보였다. 국제 원유가 등 에너지 가격도 상승세다.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천연가스 4월물 가격은 1MMBtu(25만㎉ 열량을 내는 가스량)당 4.724달러로 2.5%,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4월물 가격은 배럴당 104.09달러로 1.5% 각각 올랐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 국영 가스회사 가스프롬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가스 할인 공급을 중단할 의사를 밝히면서 가스 가격 인상을 예고했다. 천연가스 가격 상승은 유럽 경제에 직격탄이 될 수 있어 우려되는 요소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투자전략팀 상무는 “유럽연합(EU) 경제가 러시아산 천연가스 의존도가 높다는 점에서 우크라이나 사태로 천연가스 가격 등이 급등할 경우 EU 실물경제에 큰 타격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조민영 기자mymin@kmib.co.kr
우크라이나發 태풍에… 러시아 증시·루블화 가치 ‘와르르’
입력 2014-03-04 03:31 수정 2014-03-04 14: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