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 12년’ 작품상, 흑인 감독 첫 오스카 포옹… 제86회 아카데미 시상식

입력 2014-03-04 01:37

미국 역사의 가장 어두운 부분을 들춰낸 영화 ‘노예 12년’(감독 스티브 매퀸)이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거머쥐었다. 흑인 감독의 연출작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을 수상한 건 처음이다. ‘노예 12년’은 여우조연상(루피타 니옹)과 각색상까지 차지하며 3관왕에 올랐다.

‘노예 12년’은 2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8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고 영예인 작품상을 수상했다. 영화는 19세기 미국 노예 해방운동의 도화선이 된 소설 중 하나인 솔로몬 노섭(1808∼?)의 자전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영화는 노예 수입이 금지돼 흑인 납치가 빈번했던 1840년대, 노섭(치웨텔 에지오포)이 살았던 비참한 노예의 삶을 생생하게 그려내며 아카데미 시상식보다 앞서 열린 미국 골든글로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등에서도 작품상을 수상했다.

‘노예 12년’은 흑인 감독 최초의 작품상 수상이란 점에서도 눈길을 끌었다. 보수적 성향이 강한 아카데미 회원들은 그간 흑인 감독이 만든 영화엔 작품상은 물론이고 감독상도 주지 않았다. 흑인 감독으로는 처음 아카데미 작품상을 거머쥔 매퀸 감독은 비디오 아티스트 출신의 영국 감독이다.

그는 극중 대사인 “모든 사람은 생존이 아니라 온전한 삶을 누릴 권리가 있다”를 언급한 뒤 “이것이 바로 솔로몬 노섭이 우리에게 남긴 유산”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노예제도 탓에 고통받아온 사람들과 오늘날에도 노예 상태로 고통받는 사람에게 이 상을 바친다”고 덧붙였다.

시상식의 또 다른 주인공은 영화 ‘그래비티’(감독 알폰소 쿠아론)였다. 우주에서 조난당한 비행사들 이야기를 실감나게 스크린에 새겨 넣은 이 작품은 지난해 개봉 당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영화는 우주 공간에 내팽개쳐진 사람들이 느낄 막막함을 실감나게 그려내며 감독상 촬영상 편집상 시각효과상 음악상 음향편집상 음향효과상 등 7개 부문을 석권했다. 쿠아론 감독은 “주연 배우 샌드라 불럭에게 감사한다. 당신은 이 영화의 영혼과도 같았다”고 말했다.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감독 장 마크 발레)은 남우주연상(매튜 매커너히)과 남우조연상(자레드 레토)을 모두 가져가며 남자 배우상을 휩쓸었다. 에이즈에 감염된 이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담아낸 ‘달라스…’에서 눈부신 연기를 보여준 두 배우는 시상식 전부터 수상이 예견됐었다.

여우주연상 역시 예상과 다르지 않았다. ‘블루 재스민’(감독 우디 앨런)에서 약물에 의존하며 사는 신경과민 여성 재스민 역을 연기한 케이트 블란쳇이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국내에서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월트 디즈니의 ‘겨울왕국’(감독 크리스 벅·제니퍼 리)은 장편애니메이션상과 주제가상을 받으며 2관왕에 올랐다. 외국어영화상은 이탈리아 영화 ‘더 그레이트 뷰티’(감독 파울로 소렌티노)에 돌아갔다. 한편 10개 부문 후보에 오르며 다관왕이 예상된 ‘아메리칸 허슬’(감독 데이비드 O 러셀)은 무관에 그쳤다. 아카데미상은 영화제작자 배우 감독 영화음악가 등 아카데미 회원 6000여명이 참여하는 무기명 투표를 통해 각 부문 수상자를 가린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