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가족 시청시간대 낯 뜨거운 무대 왜 제동 못거나… 도 넘은 걸그룹 눈 감은 방통심의위

입력 2014-03-04 02:32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무기력이 지상파 방송의 선정성을 방치하고 있다. 지상파로 방송되는 걸그룹의 선정적 무대가 도를 넘어서고 있는데도 솜방망이 제재로 일관하고 있다.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춤동작이 가족시청 시간대에 경쟁적으로 방송되고 있고, 시청률 경쟁에 매몰된 방송사들은 “시정하겠다”며 시늉만 해도 속수무책이다.

경기도 부천에 사는 주부 권모(35)씨는 지난달 19일 중학생 남매와 함께 저녁을 먹으며 TV를 보고 있었다. 걸그룹 ‘스텔라’의 노래 ‘마리오네트’가 나오자 아이들은 “요새 저 춤이 인기”라고 했다. 권씨가 고개를 들어 화면을 보니 원피스 수영복 차림에 망사 스타킹을 신은 여가수들이 뒤로 돌아서서 자기 엉덩이를 주무르는 군무(群舞)가 펼쳐지고 있었다. 권씨는 3일 “요새는 대낮에도 TV에서 갑자기 야한 뮤직비디오가 나오고 스트립쇼 같은 가요프로그램이 넘쳐나 아이들과 TV 보기가 겁난다”고 말했다.

걸그룹의 노출 경쟁은 갈수록 강도가 높아지고 있다. 폴 댄스(봉춤)를 추며 신체 부위를 쓰다듬거나 치마를 입고 의자에 앉아 다리를 벌린 채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옷을 벗는 동작은 식상할 정도다.

가요 업계에서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특성상 어느 정도의 노출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공연장이 아닌 지상파 방송에서 벌어지는 선정성 경쟁은 규제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특히 평일 오전 7∼9시, 오후 1∼10시와 주말·공휴일·방학기간 오전 7시∼오후10시로 지정된 청소년 시청 보호시간대에도 이런 무대가 수시로 등장하지만 감독 당국은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2008년 5월 방통심의위 출범 이후 지상파 3사 가요순위프로그램은 외부 민원이나 방통심의위 모니터링을 통해 모두 29건 심의를 받았다. 이 중 주의, 경고, 프로그램 중지, 관계자 징계 등 법정 징계가 이뤄진 건 단 2건뿐이다. 나머지 27건은 의견제시, 권고 등의 행정지도만 받았다.

걸그룹의 선정성 경쟁이 극에 달했던 지난해에도 방통심의위가 제재한 건 고작 4건이다. 지난해 6월 KBS 뮤직뱅크에서 걸그룹 ‘달샤벳’이 치마를 걷어 올리며 핫팬츠를 보인 행위에 대해 권고 조치를 하는 등 모두 행정지도에 그쳤다. 방통심의위 관계자는 이에 대해 “청소년시청보호시간대에 접착식 치마를 양쪽으로 펼쳐 안에 입은 핫팬츠를 노출한 채 하체를 돌리는 안무는 부적절했다”면서도 “방송사가 문제점을 인정하고 자사 홈페이지에 해당 방송에 대한 안내문을 올린 점을 감안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걸그룹의 선정적인 모습은 여전히 방송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시청률 경쟁에 혈안이 된 방송사들이 방통심의위 지적을 받아도 바로잡는 시늉만 하고 있는 셈이다.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씨는 “단기 수익을 노린 연예기획사들은 돈벌이가 확실한 노출과 선정적 동작을 걸그룹의 미성년자 멤버들에게까지 강요하는데 당국의 제재는 시늉뿐이어서 해마다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걸그룹의 팬이 30∼40대 남성들로 옮겨가고 있는 점도 이런 현상을 부추기고 있다. 문화평론가 권경우씨는 “걸그룹의 타깃이 성인 남성에 맞춰지면서 유흥업소 댄서들이 췄던 춤을 이제 안방에서도 볼 수 있게 됐다”고 꼬집었다.

이도경 박요진 박세환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