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림반도 장악 러시아, 중재기구 설치 제안 수용

입력 2014-03-04 03:31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장악한 러시아가 이 사태를 논의할 중재기구를 마련하자는 서방의 제안을 수락했다. 그동안 계속된 압박에도 꿈적 않던 러시아가 대화에 나서기로 한 데는 이미 크림반도를 장악했다는 자신감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러시아의 흑해함대가 크림반도의 우크라이나 군에 4일 오전 5시(현지시간)까지 항복하거나 군사 공격에 직면하라는 최후통첩을 보냈다는 소식이 나오는 등 가까스로 봉합돼가던 국면이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러시아, 유럽 중재안 수용=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일(현지시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의 전화회담에서 우크라이나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유럽안보협력기구(OSCE)가 이끄는 진상조사기구와 연락기구를 설치하자는 제안을 수용했다. OSCE는 미국과 러시아를 비롯해 유럽·미주·중앙아시아 등 57개국이 가입된 기구다. 러시아 크렘린궁은 성명에서 “우크라이나의 사회적·정치적 상황을 정상화하기 위한 쌍방간·다자간 협의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러시아가 크림반도에 대규모 병력을 배치하고 이에 우크라이나가 전군에 전투준비 태세 명령을 내리는 등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극적으로 합의가 이뤄진 것이다.

일단 서방의 압박이 영향을 끼친 것이라는 평가다. 영국과 프랑스 역시 이번 주 소치에서 열리는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 예비회담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했고, 러시아를 G8에서 아예 배제하는 방안까지 거론하고 있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정치·경제적으로 러시아를 고립시키는 제재를 가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케리 장관은 당초 일정을 모두 변경해 4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를 방문할 예정이다.

사태가 지속될 경우 러시아 경제가 입을 타격을 우려했을 가능성도 있다. CNN머니는 “유럽 국가들이 천연가스 수입을 줄이면 러시아 경제에 위협이 될 수 있고, 우크라이나의 불안정성도 러시아 성장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칼자루는 푸틴에게…사실상 크림반도 장악=칼자루는 러시아가 쥐고 있다. 서방은 러시아의 군사 개입을 저지할 만한 수단도 매우 제한적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 등이 러시아에 제재를 가할 경우 유럽에 막대한 양의 천연가스를 제공하는 러시아가 천연가스 수출을 차단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유럽은 전체 석유와 천연가스 소비량의 25% 이상을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다.

러시아가 이미 크림반도를 장악한 상황에서 서방으로부터 최대한 양보를 얻어내기 위해 중재기구 설치를 수용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크림자치공화국의 수도 심페로폴 외곽 공군기지, 러시아 흑해함대 주둔지인 세바스토폴 인근 군기지 등은 러시아군이 포위한 상태다. 우크라이나 국경수비대는 3일 “10대의 러시아 전투헬기와 8대의 군용 수송기가 추가 배치됐다”고 밝혔다. 아울러 이날 오후엔 흑해함대가 크림반도 내 우크라이나 군에 4일 오전 5시까지 최후통첩을 보냈다고 러시아 인테르팍스 통신이 우크라이나 국방부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 소식통은 “우크라이나 군이 내일 오전 5시 이전에 항복하지 않으면 크림반도 전역의 군부대를 상대로 실제 공격이 이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국방부와 흑해함대는 보도에 대해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러시아로 떠나려는 친러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탈출 행렬도 이어지고 있다. 현지 언론들은 사태 발생 이후 러시아로 넘어온 우크라이나인이 전체 인구의 1.5%인 67만5000명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한편 우크라이나 과도 정부도 강경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안드레이 데쉬차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이날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러시아의 최근 행동을 군사적 ‘공격’으로 간주할 수 있다”며 “크림반도에 주둔 중인 러시아 흑해함대를 내보낼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러시아는 당초 2017년 이후 흑해함대 기지를 인근 러시아항인 ‘노보로시이스크’로 이전할 계획이었으나 2010년 우크라이나와 하리코프 협정을 체결하면서 주둔 기간을 2042년까지 연장하기로 했다. 우크라이나 검찰은 또 러시아로 도피한 빅토르 야누코비치 전 대통령에게 국가전복 기도 혐의를 보태 추가 입건했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