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김용백] 눈, 그 속성을 살펴야

입력 2014-03-04 01:35


벌써 경칩이 코앞이다. ‘봄눈 녹듯’ 금세 잊을 것 같아 눈(雪) 얘기를 마저 해두는 게 좋을 듯하다. 지난달 황당했던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 붕괴사고는 예상대로 총체적 부실에 따른 인재(人災)로 경찰에 의해 확인됐다. 눈을 제대로 안 치운 것부터 시작해 안전관리 의식 부족, 부실시공, 현장조치 미흡 등 한두 가지가 아니다. 대기업의 시설물에서 벌어진 후진적인 눈 안전사고로 오래 기억될 만하다.

통상 대형 안전사고는 담당자 한 사람의 단순 실수만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잠복해 있던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어느 한 순간 문제 상황으로 급변하면서 나타난다. 이번 체육관 붕괴사고도 그런 과정을 그대로 답습했다. 건축물은 과학과 공학을 적용한 설계 기준에 따라 건설돼야 한다는 게 상식인데도 무시됐고, 관리·감독조차 제대로 안 됐다.

눈 몰이해가 빚은 체육관 붕괴

사고 리조트 관리직원들은 체육관 지붕 붕괴를 상상하지도 못해 눈을 치우지 않았다. 지붕의 하중을 분산시키기 위해 물을 뿌려서라도 쌓인 눈을 녹이는 조치를 했어야 했다. 언론 보도에도 무감각했다. 울산 등 주변지역에서 같은 PEB(사전 제작 철골 시스템·Pre-engineered Metal Building System) 공법으로 지어진 창고, 공장 등이 적설(積雪) 무게 때문에 무너졌는데도 말이다. 경주시 담당 공무원은 강설량이 보통 때보다 많아질 경우 업체들에 눈 치우기와 시설물 안전관리를 주지시키는 업무에 태만했다.

강설량과 눈의 성질을 잘 관찰하고 상황을 간과하지 않았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눈 치우기만 제때 신속히 이뤄졌더라도 사고 발생 가능성을 크게 낮추고, 구조작업을 신속히 진행시킬 수 있었다.

이번 사고 지역에는 눈이 보통 때보다 많이 내려 쌓인 눈의 높이가 80㎝나 됐다고 한다. 붕괴된 체육관 지붕은 적설량 20∼30㎝를 감당할 수 있도록 ㎡당 50㎏ 하중을 견디게 설계됐다.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이번 눈은 보통의 마른 눈(건설·乾雪)이 아니라 바다의 습기를 흠뻑 머금은 습설(濕雪)이어서 쌓일 경우 무게가 2∼3배 가중된다는 기상청의 설명이 있었다.

과거 강설량이 많지 않은 경주에는 따로 적설량 기준이 없어 인근 울산과 포항의 건축 규정을 준용한다는 것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이 건축물 하중 기준은 2000년 6월 제정된 것이었다. 최근 10년간 이상(異常)폭설이 잦아지면서 적설하중계수(㎡당 견뎌야 하는 눈의 무게) 등 건축물 허가 기준을 기후변화에 맞춰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벌써부터 나온 상황이었다.

과학·공학적 판단으로 눈 다뤄야

건축 기준이 강화되면 건축비용 증가 등의 문제가 있어 사안은 간단하지 않다. 국토교통부는 2013년부터 2018년까지 건축 기준을 새로 설정한다는 느긋한 방침이었다. 그러나 사고가 발생하자 지난 2일 적설하중 기준을 강화하기로 하고 습설 하중에 대한 새 적용 기준도 서둘러 내놨다. 건축 기준 조정 작업도 5월까지 마무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건이 터져야 신속해지는 정부 부처와 공무원들의 모습이 되풀이되는 느낌이다.

눈에 대한 판단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눈에 대한 몰이해가 애통한 상황을 낳지 않도록 공학적, 과학적으로 눈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각종 안전조치의 필요성을 이해하게 되고, 실효성 있는 폭설 대책들을 마련해 추진할 수 있다.

눈은 그냥 놔두면 녹아 없어지는 게 아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은 과연 기후변화에 제대로 대응하고 있는지 총체적인 점검을 해야 한다.

김용백 편집국 부국장 yb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