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3월 4일] 나의 이웃은 누구인가?
입력 2014-03-04 01:33
찬송 : ‘예수님은 누구신가’ 96장 (통 94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누가복음 10장 30∼39절
말씀 : 본문은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는 말씀에 대해 예수님이 비유를 들어 설명하신 내용입니다. 한 행인이 길에서 강도를 만났습니다. 그는 강도에게 돈을 모두 빼앗기고 매를 맞아 거의 죽게 되어 길가에 쓰러져 있었습니다. 그때 제사장이 지나가지만 외면합니다. 레위인도 피해서 지나갔습니다. 마침 지나가던 사마리아인이 그를 보고는 상처를 싸매주고 주막에 데려가 다 나을 때까지 머물게 했습니다. 돈이 더 들면 돌아오는 길에 들러서 갚아주겠다고 약속까지 했습니다. 예수님은 물어보셨습니다. “강도 만난 사람의 이웃이 누구냐?” 오늘 우리에게 있어서 이웃은 누구입니까.
첫째, 삶에서 내려가는 길에 있는 사람이 우리 이웃입니다. 예루살렘에서부터 여리고까지는 30㎞ 정도 됩니다. 예루살렘은 해발 750m에 있고 여리고는 해수면 아래 250m에 있어서 성경은 ‘내려가는 길’이라고 말합니다. 이 길에서 어려움 당한 사람을 만날 때 사마리아인이 품은 마음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어떤 분은 노년의 내리막길에 서 있고, 어떤 분은 경제적 의미에서 내려가는 길에 서 있습니다. 진학과 취업이라는 문제 앞에서 내려가는 길에 서 있을지 모릅니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불쌍히 여기는 마음, 안타까워하는 마음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12장 15절에서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함께 웃고 함께 우는 이웃이 필요합니다.
둘째, 우리의 이웃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욥은 자녀와 재산을 다 잃고 중병에 걸려 고통 받는 신세가 됐습니다. 친구들이 찾아와서는 욥을 질책하고 꾸짖습니다. “네가 잘못한 것이 있으니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냐. 회개해라.” 꾸짖음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욥이 필요로 했던 것은 고통을 이길 힘과 위로였습니다. 친구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이웃이 되지 못했습니다.
강도 만난 사람이 얻어맞아 피투성이가 되어서 죽어가고 있는데 ‘어쩌다 그렇게 됐나’ ‘그러니까 왜 혼자 다니나’라는 말보다는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이 이웃의 책임입니다. 내가 먼저 나아가서 도울 때 내가 그들의 이웃이 되고 그들이 나의 이웃이 되는 줄 믿습니다.
셋째, 선한 이웃을 만나면 강도 만난 길이 영생의 길이 됩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시간을 바치고 돈을 바치는 등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다 주었습니다.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겨진 희생이 뒤따랐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셨고 그리스도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통해 그 사랑을 증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실천된 것입니다.
강도 만나 신음하는 이를 사랑의 손길로 돌볼 때, 그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는 손이 됩니다. 비록 여리고에서 강도 만난 길이지만 그 길은 살아계신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을 만나는 영생의 길이 되는 것입니다.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냐?”는 질문에 대답합니다. “자비를 베푼 자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합니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그리하며 살리라.”
기도 : 사랑의 하나님, 삶의 내리막길에서 방황하고 절망하는 이들과 함께 웃고, 함께 울며 믿음의 길을 걷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권병훈 목사(상계광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