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당신에게 이웃은 어떤 존재입니까

입력 2014-03-04 01:34


누가복음 10장 25∼37절

한국교회가 사회에 답해야 하는 명제는 ‘세상에서 교회의 역할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스스로 빛과 소금의 역할을 사명으로 표방한 이상 세상도 교회를 향해 지속적으로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교회에는 내적 사명이 있습니다. 그것은 분명 하나님을 향한 예배입니다. 예배 없는 교회는 교회가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말하기를 “예배는 당신들만의 일이요, 우리에게는 세상을 밝히는 빛과 소금으로 다가오라”고 요구합니다.

본문은 예수님이 어떤 율법교사와 영생이라는 주제로 대화를 나누는 장면입니다.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까.” 이런 질문 앞에 예수님은 “네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이를 행하라’고 하신 것은 ‘영생이란 곧 이를 행하는 것’이라는 말로 함축됩니다. 따라서 영생은 율법사가 줄줄 외웠던 ‘사랑의 내용’(27절)이 아니라 ‘그것을 행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율법교사는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라고 묻습니다(29절). 자신이나 이웃을 사랑해본 경험이 없는 사람은 사랑하는 것 자체를 알지 못합니다. 이처럼 율법교사는 ‘이웃’을 옆에 뒀지만 자신의 이웃이 누구인지 몰랐습니다. 영생을 논하는 사람이 이 땅의 일, 땅의 이치를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스스로 고상하다고, 옳다고 생각하는 이 사람은 자기논리에 빠져 자신의 옳음을 더욱 강화할 생각에 이 질문을 한 것입니다.

지금 이 율법교사는 자기의 의, 자신을 옳게 보이려는 생각에 도취된 사람입니다. 오히려 이 사람은 예수님을 궁지에 몰아넣고 자신의 정당함을 내세우기 위해 질문을 했던 것입니다.

자기를 옳게 보이려 시도하며 옳지 못하면서도 옳다고 착각하는 사람, 자기는 언제나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마땅히 자기를 인정해 주셔야 하며, 어느 순간 하나님의 도움도 필요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율법사의 모습은 바로 지금 우리 성도들의 모습이 아닌지 점검해봐야 합니다.

예수님은 율법교사가 자신의 정체를 온전히 깨닫게 하기 위해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비유 속에서 우리는 강도 만난 이웃을 달리 보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율법사는 이웃을 신학적 토론의 대상으로만 생각했습니다. 강도에게 이웃은 약탈의 대상입니다. 레위인과 제사장에게 이웃은 귀찮은 존재입니다. 주막 주인에게 이웃은 고객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사마리아인에게 이웃은 사랑의 대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율법교사에게 사마리아 사람처럼 이웃을 사랑의 대상으로 보는 사람이 될 것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유는 이미 사람들의 지지를 받는 선생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지금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는 이웃을 누구로 보느냐?” 때로는 괴팍하고 어리숙하며, 가난하고 짜증스러운 그들에게 너는 무엇이냐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예배자로 살고, 기도자로 살아가면서도 이웃을 살피지 않는다면 주님이 원하시는 바른 삶이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김상현 목장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