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홍렬 (12) 48세에 총회장 당선… 365일 중 120여일 출장을

입력 2014-03-04 01:33


남부루터교회에서 보람을 느끼며 목회를 하던 때 교단 본부에서 법과 원칙을 어기는 결정을 내리는 일이 벌어졌다. 다른 의견을 갖고 계신 분들도 있었겠지만 필자에게는 이론의 여지없는 명백한 사실이었다.

나는 입바른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귀중한 지면을 빌려 그때 견해를 달리 하셨던 분들과 필자 때문에 서운함을 느끼셨을 분들에게 용서를 빈다.

문제를 제기하고 의견을 나누는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교단 정치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됐다. 이런저런 지적을 계속 하다 보니 ‘정치 목사’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불필요한 오해를 살 바에야 끝까지 가보자는 오기도 발동했다.

총회장에 출마했다. 3차 투표 끝에 한 표 차이로 기독교한국루터회 4대 총회장에 당선됐다. 2001년 10월, 필자 나이 48세 때 총회장이 된 것이다. 교단에 50, 60대 어르신들이 계신데 새파란 놈이 총회장에 당선됐으니 받아들이기 어려운 분들이 꽤 있으셨을 것 같다.

총회장으로서 교단 내에서, 교단 밖의 연합 사업에서, 국제단체 및 회의 등에서 열심히 일을 했다. 기독교방송과 성서공회, 찬송가공회의 사역에다 우리 교단의 대외적인 섬김 사역인 베델성서연구원 일까지 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냈다.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 루터교회와 선교 교류 협정을 맺는 등 1년 365일 가운데 120여일은 출장 일정이었다.

CEO와 비슷한 역할에 충실해야 할 때가 많은 총회장 직무는 몸에 잘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불편한 때가 많았다. 소심한 성격 탓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왠지 모르게 목회 현장에서 느끼던 기쁨이나 감동을 잘 누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

특히 총회장 직무상 여러 청원을 받게 되는데 대부분 거절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정당한 거절이었지만 섭섭함을 느끼셨을 분의 모습을 떠올리며 괴로웠다. 또 목회자로서 영성을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목회 현장에 있던 때를 그리워하는 감정이 밀려오곤 했다.

총회장 시절 건강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손가락과 다리가 저렸고 걸음을 걸어도 구름 위를 걷는 것처럼 붕 뜬 느낌이었다. 증상은 점차 심해졌다. 목과 허리, 다리의 통증을 견딜 수 없어 병원을 찾아갔다. 담당의사는 경추관협착증이라고 진단하면서 “잘못하면 하체마비가 올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8시간30분이 걸린 큰 수술을 받았다. 30여일 입원을 하면서 총회장 직무는 계속했다. 본부 직원들이 결재서류를 병원으로 가지고 왔다. 자기 건강도 잘 못 챙긴 총회장을 돕느라 고생해준 본부 직원뿐 아니라 몸집이 큰 남편을 간병해준 아내에게도 미안한 마음뿐이다.

수술 후 첫 주일예배를 병원에 있는 교회에서 드렸다. 흘러나오는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에 필자는 세 가지를 기도했다. 첫째는 컴퓨터 타이핑을 할 수 있게 해주시고, 둘째는 운전을 할 수 있게 해주시고, 셋째는 카메라 셔터를 누를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였다.

수술이 끝난 뒤 후유증으로 5급 장애 판정을 받게 됐지만 하나님께서는 감사하게도 내 생명을 지켜주셨을 뿐 아니라 세 가지 기도를 모두 들어주셨다. 퇴원 후 집에 돌아와 냉장고에 현금 3만원과 함께 메모를 남겼다. 내 곁에서 고생한 아내에게 감사하다고 고백하는 내용의 메모였다. 이후 아내는 아침에 일어나면 냉장고 문부터 열어보는 습관이 생겼지만 아직까지 그런 메모를 남기지 못해 미안하다. 별 탈 없이 4년간의 총회장 임기를 마쳤고 재선에 도전했다.

정리=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