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진홍] 안철수의 약속
입력 2014-03-04 01:35
# “강을 건넜고, 건너온 다리를 불살랐다.” 2012년 9월 19일, 새 정치에 대한 열망을 등에 업고 대선 출마를 선언한 안철수는 “완주할 것이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단일화 논의에 휘둘리지 않고 끝까지 국민들의 심판을 받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지지자들은 환호했다.
하지만 그해 11월 5일, 그는 민주당 문재인 대선후보에게 후보 단일화를 위한 회담을 제안한다. 그때 “1+1을 3으로 만들어 정권교체를 이루겠다”고 말했다. 단일화 논의에 속도가 붙은 듯했으나 어느 한쪽에서 대선후보 자리를 내놓아야 하는 민감한 일인지라 진전은 더뎠다. 그는 며칠 뒤 “깊은 실망을 느꼈다”고 했다. 이에 단일화 논의가 중단되는가 싶더니 “제 모든 걸 걸고 단일화를 이루겠다”며 다시 문 후보를 만났다.
그리곤 같은 달 23일 느닷없이 대선후보에서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사전에 알았던 참모는 극소수였다. 지지자들은 멘붕 상태에 빠졌다. 그는 대선후보 자리를 내놓은 뒤 참모들에게 “나의 신조는 한 번 한 실수는 되풀이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한 참모는 “야권 후보 단일화 카드로 집요하게 압박한 민주당을 마음에서 지운 것”이라고 해석했다.
# 지난해 4월 서울 노원병 보궐선거를 통해 금배지를 단 그는 대선 때 함께 일했던 이들을 다시 규합해 신당 창당에 속도를 냈다. 그리고 지난달 17일 중앙당 창당준비위원회의 발기인 대회를 전후한 시기까지 많은 말들을 쏟아냈다. “6·4지방선거에서 모든 광역단체장 선거에 후보를 낼 것이며, 민주당과의 연대는 없다”면서 “기득권 세력은 적대적 공생관계를 이용하고 있다”고 새누리당과 민주당을 싸잡아 비난했다. 나아가 “새정치연합은 한국정치의 틀을 새롭게 바꾸는 중심 정당이 되겠다”며 국민들의 도움을 호소하기도 했다. 지지자들의 기대는 커졌다.
그러나 그는 민주당 김한길 대표와의 비밀 협상을 통해 2일 민주당과의 통합신당 창당을 선언했다. 이 결정을 내릴 때에도 몇몇 참모들과만 상의했다. 이에 따라 2주도 안 돼 새정치연합 창당은 없던 일이 돼 버렸다.
민주당의 쇄신 의지가 통합 결정의 배경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나 지지자들의 실망과 배신감을 달래기에는 역부족일 듯하다. 자신의 말을, 국민과의 약속을 쉽게 뒤집은 탓이다. 그가 청산해야 할 대상으로 꼽았던 ‘정치인을 위한 정치’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시각도 있다. 그의 앞날이 그리 밝지는 않은 것 같다.
김진홍 논설위원 j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