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김일수] 생명공동체 복원 시급하다

입력 2014-03-04 01:35


“정상화의 최우선 과제… 생명의 주권이 창조주 하나님께 있음을 깨달아야”

최근 생활고를 비관해 자살을 선택한 일가족 세 모녀 이야기가 우리 모두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아련한 죄책감 때문일까. 이런 종류의 비극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심지어 죄 없는 어린 자녀들까지 가족적 비극의 한계상황에서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다. 우리는 성장과 발전에만 골몰한 나머지 성장이 몰고 올 급격한 사회변동과 우리 삶에 미칠 충격, 발전의 그늘에 쌓인 난제들을 예측하고 대비책을 마련하는 데 소홀했던 게 사실이다. 이것이 오늘날 온갖 비정상의 온실이 된 것이다.

마침 박근혜정부가 들어서면서 ‘비정상의 정상화’가 시대정신이 되었다. 남북관계 개선, 일본 정부의 역사왜곡과 극우화 경향에 맞선 대일외교, 정치구조 개혁, 공기업 혁신, 노사관계 정착, 저출산·고령화 문제, 낙태문제, 조직범죄·성범죄·묻지마범죄의 증가와 치안불안 문제, 높은 자살률과 이혼율, 소외계층 포용 문제, 전과자 등의 사회복귀 문제 등은 우리가 시급히 정상화로 되돌려 놔야 할 난제들이다.

그러나 가장 시급한 비정상의 정상화는 만연한 생명경시 풍조를 생명존중과 생명경외의 풍토로 바꾸는 일이다. 왜냐하면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요소도 실은 생명을 살리고 생명을 더욱 풍성하게 하는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천하를 얻고도 생명을 잃으면 아무것도 아니듯, 사회와 국가도 부와 힘을 쌓을 곳 없을 만큼 소유한다 해도 생명공동체의 활력을 잃어버린다면 병든 공룡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를 앞두고 우리는 활력과 안전 측면에서 생명공동체의 위기에 노출돼 있다. 궁핍의 시대를 모질게 살아왔던 이 땅의 끈질긴 생명들이, 어느덧 풍요의 시대에 접어들기 무섭게 너무 쉽사리 무너져 내리고 있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 이혼율 1위, 저출산율 1위라는 이 오명이 어찌 국가적·사회적으로 치욕스럽지 아니한가. 분단과 참혹한 전쟁, 극한 가난의 고통, 몇 차례에 걸친 세계경제 위기까지도 허리띠를 졸라매고 국민적 연대감과 저력으로 이겨낸 우리가 어느새 활기와 희망의 끈을 놓고, 죽음의 그림자에 이끌려 죽임의 문화 속에 이처럼 쉽게 빠져 드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혹여 저 산업화시대의 시행착오와 잘못된 관행의 유산들이 이 땅의 생명풍토를 오염시킨 건 아닐까. 참된 삶의 가치를 되돌아볼 겨를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던 우리의 숨가쁜 경쟁의식 속에 가치관의 전도가 발생했던 건 아닐까. 천하보다 귀한 생명가치가 인구정책, 보건의료정책, 바이오산업정책의 희생물이 된 적은 없었는가. 더 나아가 보존할 가치 있는 자유와 안전, 결혼과 가정과 공동체의 질서 같은 가치들이 정치적·경제적 이데올로기의 밥이 된 적은 없었는가.

생명공동체적 살림의 문화가 시급히 정상의 자리로 돌아와야 한다. 죽임의 문화, 그 비탈길로 치닫는 현재의 발걸음을 멈추고, 생명공동체의 싱그러운 숲을 복원해야 할 필요성을 이젠 우리 모두 마음에 새겨둬야 할 때이다. 자살 및 생명 파괴의 문제는 이제 개인의 운명이나 비극의 차원만이 아니라 국가적·사회적 재난이요 비극이라는 인식으로의 전환도 필요해 보인다. 생명이 최우선적으로 중시되는 사회만이 자유사회, 신뢰사회, 국민행복의 사회로 나갈 수 있다. 낙망 속에서도 생명애착, 생명존중에 대한 자기신뢰와 사회신뢰가 작동하고 있다면 자살이나 묻지마범죄 같은 극단의 행동은 조절될 수 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생명을 볼모로 잡고 극한으로 치닫는 비극은 생명의 주권이 창조주 하나님께 있음을 깨닫지 못했거나 부인하는 데서 비롯된다. 단 한번 주어진 생명이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 어떤 절망과 고통, 좌절과 역경, 실패와 상실의 아픔 속에서도 생명을 처분 대상으로 삼지는 않을 것이다. 상한 갈대 같은, 꺼져가는 심지 같은 가장 약한 이들의 생명까지도 보듬어 안고 가는 생명공동체의 내일을 꿈꾸어 본다.

김일수 고려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