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형 칼럼] 아직도 가야할 길, 누구나 가야 할 길

입력 2014-03-04 01:34


지난달 22일 오전 7시. 2년간 매달 지속된 독서 모임을 위해 5명이 모이기로 한 날이었다. 시간이 됐는데도 한 명이 오지 않았다. 김승태 예영커뮤니케이션 사장. 이날 독서 모임은 예영에서 나온 책 ‘마르틴 루터’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특별한 발제자는 없지만, 책을 기획하고 출판한 그의 이야기가 중요했다. 7시12분에 김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김승태 사장님?” “여보세요, 전 일산경찰서 ○○지구대 경위입니다. 이 휴대폰 주인 아시는 분이십니까?” “아니, 어떻게…” “교통사곱니다. 심각해요. 빨리 가족에게 연락해 주세요.” 집 전화를 몰라 황급히 김 사장이 장로로 있는 거룩한빛광성교회와 그와 친한 비전북의 박종태 사장에게 연락했다. 독서모임 멤버들은 즉각 경찰이 알려준 일산의 한 병원으로 떠났다. 자유로를 달리던 중 7시53분에 박 사장으로부터 문자 메시지가 왔다. “김승태 사장님이 돌아가셨습니다.”

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간호사가 아무 말 하지 않고 격리실로 가보라고 했다. 아, 거기서 김승태 사장을 보았다. 산발한 듯한 머리에 눈은 감겨 있고, 왼쪽 허리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교통사고 직후의 처참한 모습이었다. 옆에서 부인 원성삼 권사가 아직 온기가 있는 시신을 부여잡고 오열하고 있었다. “이럴 순 없잖아요.” “주님, 이건 아니잖아요.” “주여!”라는 처절한 절규. 삶과 죽음이 이다지도 가깝게 있단 말인가.

원 권사의 절규 가운데 더욱 마음에 남는 것이 있었다. “주님, 우리가 어떻게 살았는데요….” 한국기독교출판협회 회장이기도 했던 고 김승태 장로는 평생 주의 뜻을 준행한 어진 사람이었다. 1991년 ‘예수님의 그림자’란 의미의 예영을 설립한 후 지금까지 800여종의 기독 서적을 출간했다. 돈이 되지는 않더라도 꼭 필요한 책이 그의 손을 거쳐 세상에 나왔다. 책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전하기 원했다. 출판사 운영은 언제나 어려웠지만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등 다양한 사역에도 적극 참여하면서 하나님 나라 확장에 헌신했다. 교회 장로의 직분도 충성스럽게 감당했다. 오랜 기간 동안 고등부교사로도 봉사했다. 늘 바쁘게 살았다. 독서 모임을 위해서 그는 새벽 2시30분까지 ‘마르틴 루터’를 읽었다고 한다. 발인예배가 열린 거룩한빛광성교회 예배당 스크린에 선한 모습의 고인 사진 밑에 글귀가 보였다. “책을 통한 한 사람의 위대한 가능성을 찾는 일, 이것이 저의 소명입니다.” 그는 마지막까지 출판인의 삶을 살았다.

누구나 죽는다. 이것은 진리다. 그러나 평생 주를 위해 헌신한 김승태 사장이 왜 교통사고로 이 땅을 떠나야 했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주님, 맞아요. 어차피 모두 죽습니다. 그런데 이런 죽음의 방식은 정말 아니잖아요.” 아직, 우리에겐 신비와 같은 부분이 많이 있다. 그 신비와 단말마와 같은 물음의 답이 밝혀지는 순간이 오리라. C.S. 루이스는 천국에서 우리가 할 첫 번째 말은 “아, 이랬었군요. 주님”이라고 했다. 주 안에서 살고, 주 안에서 죽은 김승태 사장의 죽음은 ‘복된 죽음’일 것이다. 그래도 허전하다. 문상 중,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그와의 추억을 기렸다. 그는 자신보다는 남을 위해 산 사람이었다. 고 김승태 장로. 그는 ‘누구나 가야 할 길’을 떠났다.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그 길은 ‘아직도 가야 할 길’이다. 그의 소명을 이어갈 남은 자들의 몫이 있으리라.

국민일보 기독교연구소 소장 t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