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과 지방에서 주택을 보유 중인 이모(55)씨는 서울의 아파트를 전세에서 월세로 전환하려다 생각을 바꿨다. 3억원에 전세를 주고 있던 서울 아파트를 월세로 돌리려고 했지만 지난달 26일 정부가 발표한 ‘임대차시장 선진화 방안’을 본 후 전세를 더 올려 받는 쪽으로 방향을 틀기로 했다. 월세 소득에 대한 세 부담을 지고 싶지 않아서다.
2일 부동산업계 및 시중은행에 따르면 임대차시장 선진화 방안 발표 이후 월세 소득과 관련한 임대인의 문의가 끊이지 않고 있다. 임대사업자 등록 후 소득을 신고해 세금을 납부하는 것이 유리한지, 그렇지 않으면 월세를 전세로 돌리거나 아예 처분하는 것이 더 유리한지 임대인의 손익 계산이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임대시장 자체의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임대인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는 것은 세액공제 확대로 인한 세원(稅源) 노출이 주 요인이다. 정부가 이번 대책을 내놓으면서 2주택자 이하(월세 소득 연 2000만원 이하)에 대해 분리과세키로(14%) 했지만 기존에 세금을 전혀 안 내던 임대인 입장에서 이를 혜택으로 받아들이긴 쉽지 않다. 박합수 KB국민은행 부동산팀장은 “이번 방안 발표로 사실상 임대등록제가 실시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며 “분리과세 혜택이 있지만 소득 노출로 월세를 계속 놓을지 말지를 고민하는 임대인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고액 월세가 많은 서울 강남권에 주택을 보유한 임대인들은 고소득자가 많아 종합소득과세에 대한 두려움이 큰 상황이다. 이번 조치로 세원이 노출된 임대인의 경우 보유 주택 수와 임대소득 등에 따라 임대소득과 연봉을 합산해 최고 38%의 세율을 부담할 수 있다. 1주택자여도 9억원 초과 주택에서 2000만원이 넘는 월세 소득을 얻는다면 종합소득과세 대상이 될 수 있다.
이에 따라 ‘월세 시대’를 대비했다는 정부 의도와 달리 전세 공급이 오히려 늘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반(半)전세의 경우 아예 전세로 돌리려는 움직임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전세 공급 증가로 인한 가격 하락 효과를 낙관할 수만은 없다. 전세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임대수익이 기대되는 월세에 대한 보상심리로 전세 가격을 높게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관련법의 국회 통과 등 과세 관련 방침이 명확해지기까지 월세 계약을 미루려는 움직임이 나타나 임대시장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큰 상황이다.
임대인이 월세를 유지하는 경우 월세를 올려 세금에 따른 손실을 보전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여전하다. 이 경우 임차인은 세액공제에 따른 혜택이 크지 않을 수 있다. 또 임대인이 세원 노출을 피하기 위해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유주택자나 총급여 7000만원 이상 세입자를 가려 받는 ‘꼼수’를 부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로 인해 이번 조치가 임대소득에 대한 과세 방침을 밝히는 등 큰 방향에선 맞지만 시장 상황을 감안해 속도를 조절하거나 추가적으로 보다 세밀한 보완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정태희 부동산써브 팀장은 “베이비부머 세대의 경우 은퇴 이후 월세로 생활하려는 경우가 많은데 선진화 방안대로 되면 이분들의 투자가 위축돼 임대주택 공급이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박 팀장은 “우리나라의 경우 리츠나 사업자에 의한 임대시장이 걸음마 단계인 상황에서 개인 임대인의 공급 역시 위축될 수 있다”며 “2주택자에 대해서는 비과세를 해주는 등 완충지대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
월세 시대 대비 한다더니… 정부 ‘임대차 선진화 방안’ 부동산 시장 혼란 가중
입력 2014-03-03 02:31 수정 2014-03-03 14: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