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의회, 군사력 사용 승인… 우크라, 全軍 경계태세 돌입

입력 2014-03-03 03:31 수정 2014-03-03 16:10

전운 감도는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물리적 개입 강도를 높여가고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 안의 러시아’로 불리는 크림반도에는 전운마저 감도는 상황이다. 국제사회도 러시아의 군사 개입을 차단하기 위해 긴박하게 움직이고 있지만 마땅한 대안이 없어 고민에 빠졌다.

◇러시아, 군사력 사용 승인…긴장 최고조=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의회로부터 우크라이나에서 군사행동을 할 수 있는 전권을 위임받고 크림반도를 장악하자 우크라이나 사태는 언제 군사적 충돌이 일어날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상황이 됐다.

러시아는 이미 크림반도에 대규모 군 병력을 이동시키는 등 군사 개입을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이날 러시아가 병력 6000명 규모를 크림반도에 이동시켰다고 전했다. 과도정부의 크림반도 파견관인 세르게이 쿠니친은 전날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러시아 항공기 13대가 각각 병력 150명을 태우고 수도 심페로폴 인근 그바르데이스코예 공항에 착륙했다”고 밝혔다. 지난달 26일부터는 우크라이나 인접 서부지역에서 병력 15만명, 전투기 90대, 탱크 870대, 군함 80척 등이 대규모 기동훈련에 돌입한 상태다.

러시아의 물리적인 압박이 거세지자 알렉산드르 투르치노프 우크라이나 대통령 권한대행은 예비군 소집령과 함께 전군에 전면 경계태세를 갖추라고 명령했다. 원자력 발전소, 공항 등 주요 기간시설에 대한 보안도 강화했다. 아르세니 야체뉵 과도정부 총리는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총리와의 통화에서 “군사 개입은 전쟁의 시발점이자 양국의 관계를 끊는 사건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심상치 않게 흘러가자 국제사회도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는 28개 회원국의 대사를 2일 본부로 소집했고, 유럽연합(EU)도 3일 오후 긴급 외무장관회의를 열기로 했다. 아르네스 포그 라스무센 나토 사무총장은 긴급 회의 직전 “러시아의 군사 개입은 유엔 헌장 위반이며 유럽의 평화와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오는 6월 러시아 소치에서 열리는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 보이콧 움직임도 나오고 있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는 G8 정상회의 예비회담 참여를 유보하겠다고 밝혔고, 캐나다는 아예 예비회담에 불참키로 했다.

그러나 러시아가 실제 군사공격 카드를 사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의견이 우세하다. 그동안 리비아나 시리아 사태에서 외국 개입을 강하게 반대해 온 러시아가 이번 사태에 직접 개입하면 그동안 주장해 온 원칙을 스스로 깨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러시아가 크림반도의 분리독립 움직임을 부추기고 뒤에서 무기를 지원하는 등의 방식으로 개입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미, 냉전 종식 후 최대 동-서 대결 위기…오바마 ‘시험대’=미국과 유럽의 고민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제지할 ‘지렛대’가 마땅치 않다는 데 있다. 푸틴이 러시아군을 크림반도에 배치할 계획임을 공식적으로 밝히기 전 백악관은 이미 이에 대응할 방안을 토론하고 있었다.

G8 정상회의 불참, 진행 중인 러시아와의 경제협정 취소, 더 나아가 G8에서 러시아 축출과 미 군함의 크림반도 이동 등이 그것이다. 일부 미 상원의원들은 러시아 경제에 타격을 주는 금융제재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들이 푸틴이 크림반도에 군사개입을 주저하게 할 만큼 ‘고통스러운’ 제재가 될지는 의문이다. 우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러시아는 자국에 대한 어떠한 유엔 제재도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석유와 가스 등 천연자원이 풍부해 경제 제재가 먹힐 가능성도 높지 않다. 게다가 서유럽 국가들이 대부분 천연가스를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어 러시아는 궁지에 몰리면 가스 공급 중단이라는 카드로 대응할 수 있다.

장기적인 제재 수단에는 러시아가 반응을 보일 수 있다. 오바마 행정부는 이란 경제를 파탄 직전에 이르게 한 금융제재를 러시아에도 가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또한 막대한 반대급부가 따른다. 러시아와 경제적 유대가 강한 유럽 국가들이 동참을 꺼릴 것이고, 시리아 내전과 이란 핵협상 등에서 러시아의 협력이 긴요한 미국으로서도 강력한 금융제재라는 방아쇠를 당기는 데 주저할 수밖에 없다.

미 브루킹스연구소의 피오나 힐 연구위원은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무엇을 할 수 있나”라고 반문했다. 그는 “2008년 조지아 전쟁 때도 미국은 제재와 레드라인(금지선)을 얘기했다”면서 “결국 우리는 격분하겠지만 뒷짐을 질 것이고 그냥 지켜볼 것이다. 푸틴은 미국이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용상 기자,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sotong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