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김영석] 집권 2년차 징크스
입력 2014-03-03 01:36
2009년 1월 2일 청와대 춘추관.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신년 연설의 다섯 번째 주제로 ‘녹색 성장’을 제시했다. 그는 “4대강 살리기는 28만개의 일자리를 만들고, 생태문화를 뿌리내리게 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4대강 사업을 집권 2년차 최대 역점사업으로 추진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담아서다.
이후 일정은 일사천리. 대통령은 같은 달 6일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4대강 사업을 포함한 ‘녹색뉴딜 사업’에 50조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다음 달 4대강 살리기 기획단 발족, 6월 마스터플랜 발표, 11월 전국 동시다발 착공 등 누구도 이명박정부의 불도저를 막아설 수 없었다.
5년이 흐른 지금 평가는 어떠한가. 4대강 사업 예산 22조원 중 8조원을 떠맡은 한국수자원공사는 부채를 줄이기 위해 물값 인상을 정부에 최근 요청했다고 한다. 감사원은 지난해 10월 이 전 대통령을 사법처리 대상으로 검토했다고 밝혔다.
신년 연설에서 함께 제시했던 녹색뉴딜 정책도 전(前) 정부 정책 재탕이라는 오명 속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 지 오래다. ‘글로벌 외교’로 포장됐던 해외자원외교는 이명박정부 실세들의 사법처리로 막을 내렸다. 이명박정부 집권 2년차 3대 정책의 성적표다.
이처럼 역대 대통령들은 집권 2년차가 되면 ‘업적’성 핵심 정책들을 제시하곤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4년 ‘행정수도 이전은 국운이 걸린 문제’라며 강하게 밀어붙였다. “수도 이전 반대는 대통령 불신임”이라는 극단적 단어까지 사용하면서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같은 해 10월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 헌법소원은 위헌이라고 결정하면서 노 전 대통령은 또다시 정치적 위기를 맞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집권 2년차였던 1999년 정보기술(IT) 벤처기업 육성 정책과 코스닥 시장 활성화 방안을 발표하며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돌파를 시도했다. 2000년 말 미국 IT 버블이 붕괴되면서 펀더멘털이 부족했던 IT 기업들은 거리로 내몰렸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4년 세계화의 원년을,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89년 주택 2백만호 건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집권 이듬해인 1962년 김일성 주석 초청 카드를 꺼냈다. 그 결과는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역대 대통령들은 ‘집권 2년차’에 왜 집착해 왔을까. 첫째는 자신감이다. 대부분의 대통령들이 집권 1년차 땐 인사 파동과 현안들에 발목이 잡혀 뒤처리에 골몰하게 된다. 그러나 2년차 땐 국정 운영 지지도도 안정권에 접어들면서 대통령 자신만의 정책 추진에 자신감이 붙게 된다. 자신감이 독선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은 대목이다. 또 하나는 업적주의다. 집권 후반기로 들어서면 사실상 새로운 정책 추진이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집권 초반기 마지막인 2년차에 승부를 걸게 된다. 레임덕을 우려한 조급증이 발동한다는 얘기다.
박근혜 대통령도 역대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474’ 정책과 통일준비위원회를 집권 2년차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474 정책은 2017년까지 4%대 잠재성장률, 고용률 70%,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를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벌써부터 이명박정부의 747정책(7% 경제성장률, 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 7대 강국)과 별반 차이가 없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숫자 지상주의에 빠졌다고도 한다. 통일준비위 역시 발족도 하기 전에 옥상옥 논란에 휩싸여 있다.
박 대통령은 60%대 전후의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좀더 차분하게 준비해 내실을 다질 시간과 내부 동력을 갖고 있다는 의미다. 2년차 징크스는 준비된 대통령에겐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김영석 정치부 차장 y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