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우선덕] 노래를 부르며

입력 2014-03-03 01:36


설거지나 빨래를 하다 보면 어느새 열심히 노래 부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흥얼거리는 노래는 청탁(淸濁)불문에 호불호 노래가 따로 없다. 국민학교 시절에 배운 동요, 광복절 개천절 삼일절 졸업식 스승의 날 어버이날 등 기념일 노래, 민요, 아버지가 좋아한 포스터와 드보르자크, 어머니가 즐겨 부르는 노래, 그리고 슈베르트와 우리나라 수많은 가곡, 유명 시가 무색하게 훌륭한 노랫말을 가진 우리나라 많은 유행가. 그중 ‘꽃 중의 꽃’이라는 노래도 대부분 한 번은 짚고 넘어간다. 트로트에 4분의2박자. 가사는 이렇다.

꽃 중의 꽃 무궁화 꽃/ 삼천만의 가슴에 피었네 피었네 영원히 피었네/ 백두산 상상봉에 한라산 언덕위에/ 민족의 얼이 되어 아름답게 피었네.

많은 노래가 부르거나 듣다 보면 누선을 건드린다. 예술이란 게 슬픔 고통 애수에서 발현하기 때문이리라.

‘꽃 중의 꽃’은 짧은 노래인데 ‘삼천만의 가슴’이란 소절에서 벌써 마음이 뜨끈해진다. 민족주의자가 아닌데도 민족에 대한 애련이 온몸에 들어찬다. 노래 나온 해가 1956년. 노랫말에서의 삼천만은 당시 남북인구를 합한 인구일 터. 그래서 분단의 아픔이 다가온다. 종내 이북의 두 누이를 못 만나고 떠난 우리 아버지가 가엾고 안타깝다. 2∼3분에 50∼60년간의 일을 떠올리게 하는 생각의 자유로움이라니. 생각도 노래도 정말 굉장한 것이다.

며칠 전 어머니의 85회 생신이라 형제들과 ‘어머니은혜’를 불렀다. 빠른 박자지만 끝까지 씩씩하게 부르기는 힘든 노래다. ‘높고 높은 하늘이라 말들 하지만 나는 나는 높은 게 또 하나 있지’ 하는 시작부터 이미 ‘낳으시고 기르신 어머니 은혜’를 절절히 아는 우리들 목청이 울음으로 빡빡하게 아파 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95주년 3·1절에도 저절로 노래가 나온다. ‘기미년 삼월일일 정오. 터지자 밀물 같은 대한독립만세.’ 우리가 있지 않던 1919년의 일이고 광복이 대체 언제인가. 그런데도 노래를 하다 보면 허공 저기에 겨우 청소년인 유관순열사가 독립만세를 외치고 있다. 우리 자식보다 한참 어린 유관순열사. 왜놈에게 잡혀 온갖 고문을 당하고 퉁퉁 부은 얼굴로 마지막 사진을 찍힌다. 역시 노래를 끝까지 부르지 못한다. 비록 잠시지만 눈물과 함께 가슴에 잉걸불 같은 애국애족의 불꽃이 인다. 어머니 은혜를 부르며, 삼일절 노래도 부르며 숭고한 희생들을 딛고 우리가 있음을 또 다시 안다.

우선덕(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