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칼럼] 충성심·경륜이 중요하다지만…

입력 2014-03-03 01:35


“불통·술수·비리·과거 연상시켜… ‘신386’ 중용 이쯤에서 멈췄으면”

박근혜 대통령 취임 1주년 성적표에서 인사(人事) 분야는 낙제점에 가깝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1호 인사인 윤창중씨가 대통령의 미국 방문 중 인턴 여성을 성추행한 혐의로 아직도 수사 대상에 올라 있는 것을 비롯해 말(言) 조심하라는 경고를 받았음에도 결국 말실수 때문에 최근 낙마한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에 이르기까지 인사 잡음 사례들은 수두룩하다.

소위 ‘신386’ 논란도 있다. 1930년대에 태어나 80세를 바라보고 있으며, 60년대에 사회활동을 시작한 이들이 ‘신386’이다. ‘신386’이란 신조어는 이명박정부 시절 37년생인 최시중씨가 방송통신위원장으로 임명되자 간간이 나오다가 지난해 8월 박 대통령이 청와대 2기 비서실을 이끌 대통령비서실장에 39년생인 김기춘 전 법무부 장관을 발탁하자 본격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70대인 현경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홍사덕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상임의장, 이경재 방송통신위원장, 심대평 지방자치발전위원장 그리고 보궐선거를 통해 국회에 입성한 서청원 새누리당 의원 등이 그 범주에 속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2선으로 물러나 있다가 전면에 부상(浮上)한 원로들이 곳곳에 포진하다 보니 정치권에선 ‘꺼진 불도 다시 보자’는 옛날 표어가 다시 유행을 탈 정도다.

‘올드보이들’의 화려한 귀환에 대한 여권의 설명은 이렇다. 첫째 충성심이다. 실제 박 대통령에 대한 이들의 충성심은 대단하다. 김 비서실장의 경우 첫 공식 브리핑에서 ‘윗분의 뜻을 받들어’란 극존칭 화법을 자연스럽게 쓴 데 이어 취임 1주년을 맞은 박 대통령에게 ‘사위지기자사(士爲知己者死·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에게 목숨을 바친다)’란 문구를 적어 전달했다. 홍사덕 대표상임의장은 2007년과 2012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때 박근혜 캠프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었다. 서청원 의원은 2008년 18대 총선 당시 ‘친박연대’라는 정당을 만들어 친이계에게 ‘공천 학살’을 당한 20여명의 친박 성향 후보들을 국회에 진출시켰다.

둘째는 경륜이다. 근대화와 민주화 과정을 거친 풍부한 노하우를 안정적인 국정운영에 활용하기 위한 것이라는 얘기다. 일종의 온고지신(溫故知新)인 셈이다. 이밖에 우리 사회의 고령화 추세를 감안한 것이라는 해명도 있지만 설득력은 떨어진다.

나이 자체를 문제 삼을 순 없을 것이다. 나이보다 그들이 어떤 사고(思考)를 하고, 품행은 어떤지가 중요하다고 봐야 옳다. 그들의 지혜가 소중한 자산이라는 점도 수긍할 만하다.

그럼에도 부정적 측면이 있는 건 사실이다. 우선 시대 흐름과 어울리지 않는다. 지금은 소통이 중시되는 사이버 민주주의 시대다. 발칙한 상상력을 필요로 하는 창조의 시대이기도 하다. 하지만 강한 충성심은 대통령 비판 세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고 적대시하는 것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 박 대통령의 불통 이미지가 더 고착될 수 있다는 얘기다.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할 가능성도 적다.

미래보다 과거를 연상시키고, 안정감은 주지만 활력과 패기를 느끼기 힘들며, 여권 내 소장파들 입지가 줄어들 수 있다는 것도 단점이다. ‘부산 초원복집 사건’, ‘차떼기 사건’, ‘공천헌금 사건’ 등 일부 원로들이 연루된 추문들은 공작정치와 권모술수, 부패, 비리 등 어두운 이미지의 단어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일각에서는 김 비서실장과 강창희 국회의장이 멤버인 박 대통령 자문그룹 ‘7인회’의 나머지 인사들을 포함해 추가로 발탁될 원로가 있을 것으로 전망하지만 아닐 것이라고 믿고 싶다. 이쯤에서 자제돼야 한다. 원로들은 욕심을 부리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대통령을 위하는 길이다. 새누리당 당권에 도전할 것으로 알려진 서 의원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다. 벌써 두 차례나 당 대표를 지내지 않았나.

반면 박 대통령이 신구(新舊) 조화를 위해 머지않아 비교적 젊은 세대들을 기용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정말이지 그랬으면 좋겠다.

김진홍 논설위원 j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