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정승훈] 사교육과 돼지엄마

입력 2014-03-03 01:35

고3 때 대학에 낙방한 후 대입 종합학원에 다니기 전까지 개인적으로 경험한 사교육은 초등학교 시절 주산학원에 2년 남짓 다닌 게 전부였다. 태권도학원을 가라는 어머니의 권유를 뿌리치고 주산학원을 선택한 이유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상고를 다니던 누나들 곁에서 전표를 왼손에 쥐고 하나씩 넘기며 오른손으로 주판을 튕기던 기억은 유년 시절의 소중한 추억 중 하나다. 해본 이들은 알겠지만 주산을 배우면 암산이 빨라진다. 천 단위 만 단위의 덧셈, 뺄셈을 암산으로 답할 때 “아빠, 대단해요”라고 감탄하는 딸아이를 보면 30여년 전 사교육의 효과가 남아 있음을 느낀다.

사교육의 일반적 의미는 학교 외에서 이뤄지는 모든 교육을 가리킨다. 사전적으로는 학생 혹은 학부모가 의사결정의 주체가 되어 이뤄지는 교육을 뜻한다. 하지만 부모 판단만으로 자녀를 학원에 보내는 경우는 많지 않다. 대다수는 “주변의 권유 혹은 분위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소위 ‘돼지엄마’(자녀를 명문대에 보내기 위해 자녀 교육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엄마들의 대표를 뜻하는 은어)로 대표되는 학부모 이너서클에서 빠지지 않기 위해 보내는 경우가 상당수다.

사교육에 대한 국민의 부담이 크다 보니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공교육 정상화’는 빠지지 않는 메뉴다. 박근혜정부 역시 ‘공교육 살리기’를 내걸고 있다. 특히 영어 부문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전 정권의 ‘아린쥐’ 논란과 차별화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사교육이 기본적으로 입시를 위한 것인 만큼 대입 수능시험에서 영어 과목을 쉽게 출제함으로써 수요를 억제하겠다는 의도다.

하지만 걱정되는 부분이 적지 않다. 영어를 쉽게 출제하면 변별력 확보를 위해 수학 등 다른 과목에 대한 사교육이 더 강화될 수밖에 없다는 게 그 첫째다. 둘째는 이제 영어는 단순한 대입과목이 아니라는 점이다. 자녀를 영어학원에 보내는 이유는 입시에서 점수 상승을 기대하는 게 가장 크지만 이외에 영어를 못하면 결국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는 위기의식도 반영돼 있다. 자칫 영어 사교육 억제 효과는 거두지 못한 채 다른 과목 사교육만 부추길 수도 있다.

영어 사교육을 억제하려면 정책 입안자들이 자녀를 영어학원에 보내는 부모 마음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 한 지상파에서 방영됐던 드라마 보기를 권한다. ‘그녀들의 완벽한 하루’라는 제목의 이 드라마만큼 영어 사교육의 현실과 돼지엄마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자료는 많지 않다.

정승훈 차장 s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