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한류 위상 높이기, 이젠 손연재가 이끈다

입력 2014-03-03 01:33


2014 시즌 모스크바 그랑프리로 출발

‘체조 요정’ 손연재(20)가 ‘피겨 여왕’ 김연아(24)의 빈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까.

김연아는 2014 소치올림픽을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했지만 손연재는 이제 ‘국민 여동생’ 티를 벗고 선수로서 정점을 향해 달리고 있다. 손연재는 2일(한국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2014 러시아 그랑프리를 시작으로 각종 대회에 출전해 메달 사냥에 나설 예정이다.

김연아와 손연재는 한국을 대표하는 스포츠 아이콘이다. 둘은 빼어난 실력과 외모, 그리고 타고난 근성으로 피겨스케이팅과 리듬체조의 불모지 한국에서 기적 같은 스토리를 이어간다는 점에서 많이 닮았다. 둘은 2009년 한 해와 2010년 4월 말까지 IB월드와이드(구 IB스포츠) 소속으로 한솥밥을 먹기도 했지만 김연아가 스포츠매니지먼트사(올댓스포츠)를 설립하면서부터 자주 만나지 못하는 사이가 됐다.

7세 때 언니를 따라 스케이화를 신은 김연아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전국동계체전 등 각종 국내 대회 우승을 휩쓸면서 잠재력을 발휘했다. 2002년 4월에는 첫 국제대회인 슬로베니아 트리글라브 트로피 대회 노비스(13세 이하)부문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듬해 11월에는 크로아티아 골든베어 대회 노비스 부문서 또 한 번 우승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2003년 국가대표가 된 김연아는 주니어 무대에서도 정상에 섰다. 2004∼2005시즌부터 두 시즌 동안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주니어 그랑프리 시리즈와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 5개, 은메달 3개를 차지하는 등 한국 선수로는 전인미답의 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특히 15살이던 2006년 피겨주니어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평생의 라이벌’이 될 아사다 마오를 꺾고 금메달을 획득하며 시니어 무대에서의 활약을 예고했다.

손연재도 김연아의 어린 시절을 보는 것처럼 일찌감치 두각을 나타냈다. 손연재는 2005년부터 3년 연속 전국소년체육대회 리듬체조 부문 1위를 차지하며 예비스타로 명성을 떨쳤다. 2009년에는 슬로베니아 챌린지대회 주니어부분 개인 종합 우승을 거두며 ‘리듬체조의 요정’으로 떠올랐다.

2010년 만 16세 어린 나이로 국제체조연맹(FIG) 월드컵 시리즈 콜베이 대회에서 개인 종합 1위에 올랐다. 여세를 몰아 손연재는 그해 말 태극마크를 달고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출전해 한국 리듬체조 역사상 최초로 개인종합 3위(동메달)을 차지했다.

위기도 수없이 찾아왔다. 김연아는 2006년부터 2008년까지 3년 연속 그랑프리 파이널을 제패하고도 고관절 부상 때문에 2007년과 2008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잇따라 동메달에 머물렀다. 하지만 2008∼2009 시즌 부상에서 회복된 김연아는 그랑프리 시리즈를 완벽하게 평정한 뒤 마침내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2009∼2010시즌 역시 라이벌들을 멀찌감치 따돌리며 독주한 끝에 2010 밴쿠버올림픽에서 역대 최고점(228.56점)으로 세계 정상에 우뚝 섰다.

올림픽 금메달의 꿈을 이룬 김연아는 방황했다. 평생의 꿈이었던 금메달을 이룬 만큼 선수 생활을 계속하는 것에 대해 의욕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랑프리 시리즈는 건너 뛴 채 2010, 2011년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해 각각 은메달을 차지했지만 현역과 은퇴 사이에서의 방황은 이어졌다. 그러다가 평창올림픽 유치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스포츠 행정가에 대한 꿈을 새로 키우게 된 김연아는 다시 한번 올림픽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지난해 3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며 한국에 여자 싱글 출전권 3장을 안겼다. 지난해 9월 갑작스런 발목 부상 때문에 그랑프리 시리즈를 건너 뛰어야 했지만 김연아는 이번 소치올림픽에서도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히며 2연패가 예상됐다. 하지만 개최국 러시아의 ‘계획된 편파판정’ 작전으로 은메달을 목에 걸고 정든 은반과 이별하게 됐다.

손연재 역시 역경이 많았다. 손연재는 허약한 체질과 잇단 실수로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발휘하지 못했다. 2010년 회장배 리듬체조대회에서는 줄이 꼬이거나 후프를 놓치는 실수를 연발했으며, 2011년 FIG 월드컵 시리즈에서도 리본에서 실수하는 바람에 목표했던 10위권 진입에 실패했다.

위기 대처 능력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그를 아프게 했다. 체력 보완과 동시에 실수를 줄이는 것이 최대 과제였다. 그리고 실수 후에도 대범하게 연기를 마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손연재는 2014 인천아시안게임을 목표로 러시아에서 전지훈련을 했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개인 종합 5위, 2013년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인 최초로 국제대회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는 한국 리듬체조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지난해 10월에는 전국체육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대회 4연패를 기록했다.

손연재는 이제부터 전성기를 맞을 전망이다. 이전에 비해 한층 더 성장한 손연재의 모습이다. 손연재는 실수 후에도 흔들림 없는 연기를 선보이며 호평을 받았다. 손연재는 김연아가 그랬듯이 시련과 역경을 딛고 세계 정상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김연아는 손연재의 거울이다. 여왕과 요정은 같은 듯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김연아는 힘든 환경 속에서도 불굴의 의지와 노력으로 세계 정상을 차지했다. 손연재 역시 실수를 빈발하지만 특유의 끈기를 앞세워 세계 정상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여왕’이 떠난 마당에 ‘요정’의 끝없는 도전이 ‘스포츠 한류’ 위상을 드높일 수 있을지 이목이 쏠리고 있다.

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