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태수法’ 만들어 공평과세 실현해야
입력 2014-03-03 01:41
3일은 정부가 제정한 납세자의 날이다. 납세의무는 교육·근로·국방의무와 함께 국민의 4대 의무에 속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세금을 내는 것을 달가워할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정부는 국가를 운영하기 위해 국민에게 과세할 수밖에 없고, 국민도 합리적인 수준의 과세는 용인한다. 우리나라에서 월급쟁이들만큼 정직하게 세금을 내는 이들도 없다. 투명한 유리지갑을 갖고 있으니 소득을 숨길 수도 없고, 빼돌릴 의지도 갖고 있지 않다. 연말정산 때 한 푼의 세금이라도 돌려받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는 월급쟁이들의 모습은 상상하기 어렵다.
이런 월급쟁이들을 분노케 하는 부류들이 있다. 온갖 방법을 동원해 탈세하고, 충분한 여력이 있는데도 세금을 내지 않고 버티는 사람들이다. 기업인 변호사 변리사 의사 학원장 등 상습적이고 고의적으로 세금을 탈루·체납하는 이들이 적잖다. 지난해 11월 현재 세금 5억원 이상을 1년 넘게 내지 않은 개인은 1662명, 기업은 936곳에 이른다.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2225억원)을 비롯해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1073억원), 조동만 전 한솔그룹 부회장(715억원), 정 전 회장의 아들 정보근 전 한보철강공업 대표(644억원) 등이다. 세금을 체납하면서 최고급 외제차를 몰고 있는 전문직 종사자들과 법인들도 많다. 국세청과 지방자치단체를 통해 고액 체납자 명단과 체납액이 발표될 때마다 월급쟁이들은 땅을 치고 분개한다.
어느 정도 생활수준을 유지하는 월급쟁이들의 반응이 이렇다면 기초생활수급자들과 잠재적 빈곤층의 공분은 짐작하기 쉽지 않다. 최근 주인아주머니에게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글과 함께 70만원이 들어 있는 봉투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서울 석촌동 세 모녀의 한 맺힌 삶을 접하게 된 서민들은 세금 탈루·체납자들을 떠올리며 비분강개했을 것이다. 우리 주변에는 세 모녀처럼 힘겹게 살아가는 가난한 이웃들이 넘쳐난다.
정부가 납세자의 날을 맞아 성실 납세자를 선발해 훈·포장과 표창을 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악질적인 탈세범과 세금 체납자를 찾아내 응징하는 것이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최근 감사원 감사결과에서 드러난 것처럼 국세청이 과세자료를 제대로 관리·활용하지 않아 체납자들로부터 거둬야 할 세금 1207억원을 방치한 것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공평한 과세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세대·계층별 위화감을 줄이고,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한 첩경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국민은 ‘전두환법’ 제정을 계기로 정부가 추징금 환수에 박차를 가한 것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이참에 ‘정태수법’이라도 만들어 세금 탈루·체납자들을 옥죄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