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스노보드 꿈나무 조현민군의 소망
“혹시 굿네이버스?”
스노보드를 든 소년이 취재진에게 먼저 말을 걸어왔다. 지난 25일 강원도 횡성의 웰리힐리 스키장에서 만난 조현민(13·부천 부광초5)군은 평창 동계올림픽 꿈나무답게 씩씩하고 밝았다. 눈빛에 그을린 낯빛이 귀엽게까지 느껴졌다.
현민군은 눈 위를 보드 하나로 미끄러지는 스노보드 종목에서 이미 ‘몬스터 베이비’로 불리는 소년 아이돌이다. 올림픽팀에서 함께 훈련하기도 했다. 정식 출전권을 딸 수 있는 나이가 되면 국가대표로 나서서 설상 종목(눈 위에서 경기하는 스키·스노보드 등) 사상 최초의 금메달에 도전한다. 금메달 딸 자신 있냐고 물었더니 현민이는 씩 웃었다.
웃는 얼굴에선 구김살을 찾기 어려웠지만, 아버지와 단둘이 월셋방에 사는 현민이는 가정 형편 때문에 몇 번이나 스노보드를 포기하려 했다. 그때마다 그를 격려하고 힘이 되어준 것은 아버지 조원채(42)씨였다.
현민이가 28개월 때 처음 자기 키보다 더 큰 보드를 탄 것도 아버지 덕분이었다. 아버지 조씨는 “젊은 시절 취미로 탔던 보드를 호기심에 아들에게도 태워줬는데 처음부터 부드럽게 눈 위를 미끄러져 갔다”고 말했다. 재능을 알아본 조씨는 아들을 지금까지 계속 훈련시켜 왔다.
현민이는 “언제부터 제가 보드를 탔는지 기억이 안 난다”며 “내 기억 속에선 항상 보드를 타고 있었다”고 말했다. 걷는 게 편한지 보드를 타는 게 편한지 물었더니 “둘 다 똑같다”고 했다.
시범을 보여 달라고 했더니 눈이 쌓인 언덕 위를 성큼성큼 올라갔다. 90도로 꺾인 절벽 끝에서 보드를 신고 헬멧과 고글을 끼더니 휘리릭∼ 몸을 절벽 아래로 떨어뜨렸다. 입을 딱 벌리는 기자 앞에서 현민이는 눈 위로 솟구치는 묘기를 보여줬다. 한번 날아오르면 몸을 서너 바퀴 돌리는 것은 예사였다. 정식으로 슬로프를 달리면 시속 200㎞를 맨몸으로 질주하면서 뛰어오르고 날아가고 몸을 뒤집어야 한다. 상상만 해도 아찔한 경기지만, 눈길을 쓰윽 미끄러져 내려오며 헬멧을 벗은 현민이의 얼굴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현민이에게 스노보드보다 더 아찔한 일은 슬로프 밖에서 있었다. 아버지 조씨는 IMF 외환위기가 닥치기 전까지는 잘나가는 젊은 사업가였다. 경기도 부천에 가게만 대여섯 개를 가지고 있었다. 20대의 성공에 취해 건달들과도 어울렸고 겨울이면 스키장에서 살았다. 현민이 엄마도 그때 만났다.
젊은 시절의 성공은 독이 되었다. 경제 위기가 닥치자 연쇄적으로 부도가 닥쳤고, 현민이 엄마도 생후 2개월 된 아들을 남겨두고 떠났다. 아버지는 스키와 스노보드를 가르치며 얻는 소득으로 현민이를 가르쳤다. 집도 차츰 줄어들더니 결국 월셋방으로 옮겨야 했다.
어린 현민이에게는 눈밭이 집이고 마당이고 엄마 품이었다. 스노보드는 아버지와 아들의 꿈이 되었다. 현민이는 2007년 39개월 때 첫 출전해 최연소 수상을 한 뒤로 대회에 나가기만 하면 각종 상을 휩쓸었다.
현민이는 일본에서도 유명하다. 지난해 스노보드로 일본 선수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었다. 현민이는 “처음엔 일본아이들이 본체만체하더니 내가 자기들을 이기니까 먼저 와서 인사를 하더라”며 활짝 웃었다.
얼음 위의 빙상 종목도 그렇지만, 설상 종목은 돈이 많이 든다. 현민이는 보드 제작업체 퀵실버나 부천의 웅진플레이도시(실내스키장) 등에서 도움을 받아 왔지만 그래도 겨울 한철 제대로 연습하려면 훈련비만 4000만원이나 든다. 부자(父子)는 몇 번이나 스노보드를 그만둬야 하는 위기를 겪었다.
이때 도움의 손길을 준 곳이 굿네이버스였다. 굿네이버스는 지난해 훈련비를 일부 지원해 주었고 올해도 현민이를 돕기 위한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아버지 조씨는 “굿네이버스 홍창표 과장님 이름을 꼭 써 달라”며 “가족보다 더 고마운 분”이라고 말했다.
28일 전국동계체육대회에서 현민이는 지난해에 이어 스노보드 초등학생 부분에서 또 우승을 했다. 이제 목표는 2018년이다.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꼭 금메달을 따서 그동안 도움을 준 분들에게 자랑스러운 애국가를 들려주는 것이 현민이와 아버지의 꿈이다.
굿네이버스 홍보팀의 조현 간사는 “현민이와 같이 꿈이 있지만 가난으로 꿈을 이룰 기회를 포기해야 하는 어린이에게는 조그만 도움이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고 말했다. 굿네이버스는 현민이와 같이 도움이 필요한 국내 어린이를 지속적으로 후원하고 있다. 조 간사는 “직접 현민이에게 지원을 보낼 수도 있고, 같은 처지의 어린이를 돕는 국내아동권리보호사업에 동참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후원문의 1599-0300).
횡성=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