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홍렬 (11) 청춘 바친 남부루터교회… 성도들 얼굴 가슴에 남아
입력 2014-03-03 01:32
남부루터교회에서 목회하며 참으로 감사한 일이 많았다. 무엇보다 필자의 가슴 속에 보석처럼 박혀 있는 성도분들의 이름과 얼굴 모습이 하나하나 떠오른다. 부족하기만 한 주의 종을 따르겠다며 교회 사역에 헌신해준 이들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목회자가 된 뒤 처음 받은 선물은 3㎏짜리 설탕이다. 고이경 집사님이 주셨다. 그때 얼마나 기분이 좋았던지 설탕 봉지를 뜯어보지 않고 6개월간 보관만 했다. 용달차를 몰던 김경택 장로님은 하루에 1000원씩 모아 필자에게 뷔페 식사를 사주셨다. 김 장로님은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정말 정성을 모아 식사 대접을 한 번 해드리고 싶었다”며 멋쩍게 웃으셨다.
“목사님께 잘 어울릴지 모르겠다”면서 여러 번 넥타이를 선물해주신 임옥진 권사님, 자녀들에게 받은 용돈을 목회자에게 슬며시 쥐어주시던 손옥순 권사님도 생각난다.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으셨던 정순동 집사님과 형제분들, 교회 일이라면 누구보다 먼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 주셨던 홍성대 장로님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계실까. 다른 교인들의 기쁨과 슬픔도 늘 자기 것처럼 함께 나누었던 유희경 유소선 전용완 유선이 김선자 권사님….
필자가 중매를 해 결혼하신 박광선 선생님도 기억에 남는다. 그분은 초등학교 교사였다. 박 선생님은 “임신을 했는데 병원에 가기 전에 목사님의 기도를 꼭 받고 싶다”면서 교회에 찾아왔다. 나는 요청받은 대로 “건강한 아기를 낳게 해 달라”고 기도를 드렸다.
그런데 출산이 임박했을 무렵 기도를 또 해 달라고 했다. 이번에는 기도제목이 조금 바뀌었다. 순산하게 해주시되 반드시 월요일 아니면 화요일에 낳을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는 것이었다.
난감했다. 날짜를 정해놓고 태어나는 아기는 없다. 목사가 출산 날짜를 맞춰 달라는 기도까지 해야 한다는 말인가. 무엇보다 세상적 필요만을 충족시키거나 무속신앙에서나 받드는 ‘좋은 날’에 출산하기 위해 기도하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다.
그러나 차근차근 사정을 들어보니 그런 욕심 때문이 아니었다. 입원 및 산후조리 기간을 감안하면 수요일 이후에 낳았을 경우 주일예배를 세 차례나 빠지게 된다고 했다. 월요일이나 화요일에 낳으면 주일예배를 두 번만 빠질 수 있다는 것. 박 선생님은 “한 번이라도 더 주일성수를 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했다. 성도님의 그 아름다운 마음을 담아 하나님께 기도했고 은혜롭게도 출산 후 두 번만 주일예배를 빠질 수 있었다.
30대 후반의 한 여성은 교회에서 좀처럼 웃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심방을 가보니 집안 분위기도 썰렁했다. 거실 한쪽의 수족관에서 노니는 열대어들을 제외하면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 성도의 남편은 열대어를 기르는 데 취미를 붙여 자식 없는 슬픔을 달랜다고 했다. 부부 모두 건강한데 결혼 이후 7년간 아기를 갖지 못하고 있었다.
이들은 나에게 기도해 달라고 간청했다. 위로의 말씀을 드리며 기도했고 새벽기도회에도 참석할 것을 권면했다. 몇 주 후에 그 성도는 모처럼 환하게 웃으며 교회에 찾아와 인사를 했다. “목사님, 기도해주셔서 감사해요. 저 드디어 아기를 갖게 됐어요.” 열 달 후 건강하게 태어난 사내아기에게 이름을 지어주었다. 믿음의 선수가 되기를 기도하며 ‘김선수’라고 지었다. 지금쯤이면 아마 준수하고 건장한 청년 크리스천이 돼 있으리라.
늘 가까이에서 함께 웃고 눈물을 흘려준 교인들과 지낼 수 있었기에 내 청춘을 다 바친 남부루터교회에서의 목회는 은혜로웠다. 내 인생의 황금기였음에 틀림없다.
정리=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