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여인천하’… 대통령에 이어 사상 첫 女 상원의장 탄생
입력 2014-03-01 02:52
칠레에서 여성 대통령에 이어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상원의장이 탄생한다. 여성이 행정부와 의회 권력을 동시에 거머쥐는 유례없는 ‘우먼파워’를 선보이며 칠레에서 ‘여풍(女風)’은 한층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칠레 언론은 27일(현지시간) 이사벨 아옌데 상원의원이 3월 1일 상원의장에 취임한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중도좌파 정당과 좌파 성향의 사회세력이 대거 참여한 ‘누에바 마요리아(Nueva Mayoria)’는 이날 아옌데 의원을 상원의장으로 선출했다고 밝혔다.
아옌데 상원의원은 1970∼73년 집권했던 살바도르 아옌데 전 대통령의 딸이다. 아옌데 전 대통령은 남아메리카에서 최초로 사회주의 정권을 실현시켰으나 그의 정권은 오래가지 못했다. 각종 개혁정책을 밀어붙이다 경제침체를 낳았고 3년 만인 73년 9월 11일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일으킨 군사 쿠데타로 무너졌다. 당시 대통령 관저에 폭탄을 투하하던 쿠데타군에 맞서 결사 항전으로 버티던 아옌데 전 대통령은 마지막 라디오 연설을 한 뒤 총으로 자살했다.
이런 비극적인 가족사를 가진 아옌데 의원은 상원의장에 선출된 뒤 “아버지도 상원의원을 역임했다”며 “딸인 제가 상원 역사에서 최초로 여성 의장으로 뽑힌 데 큰 자부심을 느낀다”고 소감을 밝혔다.
아옌데 의원이 상원의장으로서 수행할 첫 공식행사는 3월 11일 열리는 미첼 바첼레트(62) 대통령 당선자의 취임식이다. 취임식에서 상원의장 아옌데는 여성 대통령 바첼레트에게 대통령을 상징하는 어깨띠를 둘러 메주는 역할을 한다.
공교롭게 바첼레트 대통령 당선자도 아옌데 의원과 ‘동병상련’의 입장에 있다. 공군 장성이었던 아버지가 아옌데 전 대통령 편에 섰다가 피노체트 정권에서 모진 고문을 받고 숨졌다. 이 때문에 칠레 언론은 대통령 취임식과 관련, “사회주의 정권을 세운 대통령의 딸이 사회주의 정권의 바통을 이은 여성 대통령에게 어깨띠를 메주는 역사적인 장면이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바첼레트는 지난해 말 대선 결선투표에서 ‘누에바 마요리아’의 후보로 나서 62.16%의 득표율로 보수우파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바첼레트는 2006∼2010년에도 한 차례 대통령을 역임했다. 칠레 사상 첫 여성 대통령이었다.
지난해 대선과 함께 치러진 의회 선거에서는 ‘누에바 마요리아’가 상·하원 모두 다수당이 됐다. 칠레의 개혁·개방 정책이 더욱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바첼레트는 대선 때 법인세 인상과 무상교육 확대, 피노체트 정권이 만든 헌법 개정 등을 개혁 과제로 내세웠다.
백민정 기자 min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