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화 변호인단도 회장님 못 구했다
입력 2014-03-01 01:34
실형이 확정된 SK그룹 최태원(54) 회장은 지난 2년간 재판을 받으면서 크게 세 차례 변호인단을 교체했다. 공식 선임계를 낸 변호사만 20여명으로, 수임료로만 최소 100억원 이상이 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국내 굴지의 로펌으로 구성된 호화 변호인단도 ‘회장님’을 구하지 못했다. 최 회장이 “나는 결백하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은 것이 SK 측의 공판 전략을 스스로 제약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분석도 나왔다.
최 회장은 2012년 3월 시작된 1심 재판 때 국내 로펌 1위인 김앤장 법률사무소 소속 변호사들을 중심으로 대응에 나섰다. 당시 서초동 법조타운에서 최고 주가를 올리던 부장판사 출신의 민병훈 변호사도 합류했다. 최 회장은 “펀드 출자에 관여하지 않았고, 김원홍(53) 전 SK해운 고문에게 450억원이 송금된 사실도 몰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10개월간의 심리 끝에 최 회장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충격에 휩싸인 최 회장 측은 항소와 함께 1심 때의 변호인들을 대거 해임하고 업계 2, 3위를 다투는 태평양 소속의 변호사들을 새로 선임했다. 서울중앙지법원장을 지낸 이인재 대표변호사와 서울고법 부장판사 출신인 한위수 변호사 등이었다. 최 회장은 항소심 1차 공판에서 “펀드 출자에 관여한 것은 맞는다. 앞서 잘못 말씀드린 점 사죄한다”며 진술을 번복했다. 다만 “정상적인 전략적 펀드였다”며 여전히 무죄를 주장했다.
최 회장은 항소심 막바지에 또다시 변호인을 교체했다. 이번엔 헌법재판관을 지낸 이공현 변호사를 선임했다. 최 회장은 이어 “정상적 절차를 거친 펀드가 아니었다”며 다시 한 번 말을 바꿨다. 그러나 이는 재판부의 불신만 키웠다. 1심과 같은 징역 4년이 선고됐다.
상고심에서 최 회장은 마지막 카드로 대법관 출신의 김지형 변호사를 추가 선임했다. 파기환송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같은 결과가 나오길 기대했지만, 재판은 지난 27일 상고 기각으로 마무리됐다.
이런 배경에는 최 회장의 ‘무죄 고집’이 영향을 미쳤다는 해석도 있다. 최 회장은 1심 때부터 “나는 몰랐다. 죄가 없다”는 입장을 꺾지 않았다고 한다. 구치소를 찾은 변호인이나 SK 임원들에게도 이런 뜻을 강하게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회장이 ‘3전 3패’를 하는 동안 이미 구치소 생활 13개월을 넘겨 역대 최장기 수감 재벌 총수로 기록됐다.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