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 95돌] 극우 광풍… 삶이 멈췄다
입력 2014-03-01 01:33
3·1절 맞아 日 한인타운 가보니…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의 우경화 정책이 부추긴 일본의 ‘극우 광풍’에 재일 교민사회가 직격탄을 맞고 있다. 오랜 세월 힘겹게 일궈온 한인 상권은 거세진 ‘혐한(嫌韓)’ 기류에 일본인 고객이 급감한 데다 아베노믹스 엔저(低) 공세로 수익성마저 악화돼 고사(枯死) 위기에 놓였다.
28일 도쿄 신주쿠 신오쿠보의 한인 거리는 금요일인데도 문 닫은 한인 상점이 여럿 눈에 띄었다. 문을 연 곳은 ‘떨이 세일’ 같은 할인 안내문이 잔뜩 붙어 있다. 대표적 코리아타운인 이곳은 2주마다 열리는 반한 시위에 상권이 극도로 얼어붙었다. 시위가 열리면 100m 가까운 시위행렬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경찰도 수백명 동원된다. 한류 팬시 상점 이모(43)씨는 “행인이 못 다닐 정도로 거리가 엉망진창이 된다”며 “혐한 분위기에 관광객도 급감했다”고 말했다.
이 지역 한인 상점은 대개 은행에서 3000만∼5000만엔(3억∼5억원)씩 대출해 개업한 업소들이다. 그래도 한류 열풍 덕에 몇 년이면 손익분기점을 넘어설 수 있었다. 지하철역 서쪽 차이나타운의 월 임대료는 3.3㎡당 3만∼4만엔이지만 동쪽 코리아타운은 최고 10만엔까지 기록하기도 했다.
그랬던 상권이었는데 지금은 상점마다 대출금 상환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하루 평균 40만∼70만엔 매출을 올리던 상점이 요즘은 잘해야 10만∼30만엔 수준이다. 일요일 하루에만 60만엔대 매출을 올리곤 했다는 한국식당 주인은 “요새는 10만엔도 겨우 번다”고 말했다.
3년 전 7억원을 투자해 개업한 숯불구이 음식점은 최근 1억5000만원에 가게를 팔고 폐업했다. 그나마 이는 좀 나은 경우다. 가게를 내놔도 매수자가 없어 손실을 떠안고 울며 겨자 먹기로 영업하는 곳이 부지기수다.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는 “가부키초 등 유흥가에서 최근 한국으로 야반도주한 한인 업소가 여럿 있다”며 “교민이 많은 곳이면 그래도 버틸 텐데 여기는 일본인이나 관광객 손님이 없으면 타격이 크다”고 설명했다.
한류 상품은 원자재나 완제품을 한국에서 수입하는 경우가 많다. 아베 정권이 들어선 뒤 엔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수입가격이 크게 올랐고 그만큼 한인 상점 수익성은 악화됐다. 고속도로 휴게소까지 진출했던 한류 팬시 상점들은 잇따라 철수하는 중이다. 도쿄도 미나토구의 롯폰기·아카사카 등 유명 관광지 한인 상권도 줄줄이 도산 위기에 몰려 있다. 한 한국식당 주인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12년 독도에 간 뒤 한인 상가 매상이 급격히 떨어졌다. 대통령의 독도 방문에 한국이 열광할 때 여기는 직격탄을 맞았다”고 말했다.
도쿄=글·사진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