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호의 미디어비평] ‘너는 내 운명’ 별그대. 알퐁스 도데의 ‘별’로 남는가

입력 2014-03-01 10:16 수정 2014-03-02 12:59


[쿠키 방송문화비평] 27일 막내린 SBS 수목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연출 장태유 극본 박지은)는 로맨틱드라마 이상의 갖가지 신드롬을 남겼다. 당초 예정보다 연장 방영된 별그대는 판타지 장르에 코믹과 과학, 주술(呪術), 심지어 전설까지 담았다. 마지막회 시청률은 28.1%(코리아닐슨 기준). 별그대의 무엇이 그렇게 가슴을 파고들었을까.

드라마가 아무리 픽션이라지만, 아무리 가공(架空)을 넘는다 하지만 별그대의 스토리는 정말 허무맹랑하기 짝이 없다. 400년을 넘게 사는 외계인과 소머즈같은 강력한 청력, 시공간 순간이동능력까지 갖춘 초능력 ‘전지전능’이 바로 ‘매니저’ 도민준(김수현 분)이다. 더구나 미래의 일을 내다보는 초능력까지 갖춘 캐릭터로 헐리우드 영화 ‘슈퍼맨’을 훨씬 더 뛰어넘는다.

황당한 스토리에 그렇게 열광했던 이유는 분명 있다. ‘별그대’는 전형적인 ‘판타지 드라마’다. 판타지는 청소년이나 여성들에게 치명적인 중독성을 갖게 한다. 판타지(Fantasy)는 ‘공상 혹은 상상, 또는 상상의 산물’이다. 다시 말해 ‘드라마 플롯 또는 드라마의 주요 구성요소로 매직(magic)과 초자연성을 이용하는 비현실적 장르’다.(2014년 1월 23일 ‘판타지드라마, 별그대 일탈의 비결’ 참조)

판타지 요소는 마지막 방송에서 스포일러를 뛰어넘게 했다. 막장의 드라마 요소도 아니고, 흔하고 통속적인 결말도 결코 아니었다. 비상식적 설정의 전형적인 판타지드라마 포맷을 그대로 유지했다.

400년 전 지구로 온 별로 되돌아간 도민준. 최종회에선 지구상이 아닌 별과 지구간 시공간이동을 하며 5초, 10초, 그리고 1년 2개월 넘게 지구에 있다 떠난다. 불완전한 해후지만 영원한 이별이 아닌 만큼 그다지 서글프지만은 않다.

그런 점에서 죽음을 넘어서는, 간절하고 그리운 천송이와의 사랑을 마침내 이루었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해피엔딩이다. 그런데 여성시청자들은 이 점에 열광한다. ‘나만을 바라보는’ 남자 도민준은 시공을 넘어 오로지 자신만을 위하는 캐릭터는 여성시청자들에게 ‘꿈속의 이상형’이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 중 블랙홀까지 끌어다 댔다.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과 화이트홀을 연결하는 우주통로라는 의미의 ‘웜홀’(worm hole)이다. 도민준이 이제 별과 지구 사이에 순간이동을 할 수 있는 비약의 논리를 갖다 붙였다. 천송이에 대한 도민준의 사랑이 그만큼 위대하다는 방증으로 활용됐다. 무려 400년 간 자신의 별로 돌아가려 애썼던 도민준이지만 천송이와 사랑에 빠진 후 ‘모든 계획’은 망가졌다. 마침내 별과 지구를 수시넘나들며 물리적 불가항력까지 넘어섰다. 사랑의 힘은 그만큼 강하다는 점을 제작진은 암시하려 했다.

별그대가 가슴을 파고든 것은 바로 디테일에 있었다. 두 주인공 간 대사와 몸짓, 눈길, 심지어 시공간을 묘사한 카메라워킹까지 디테일은 내면 속 사랑까지 모두 다 드러내주었다. 마지막회에서 디테일은 더 절묘했다. 남산타워에서 도민준을 기약없이 기다리는 천송이의 무한기다림은 ‘침묵의 언어’였다. 그러나 시청자들에게 던지는 비언어적 미장센은 총알메시지로 시청자들의 가슴에 강력하게 박혔다.

하이라이트는 영화제 시상식 장면. 도민준의 디테일한 대사와 순간의 키스신이 여성들의 잠재적 갈망을 폭발시켰다. 2017년 영화제 시상식에 잠시 나타난 도민준의 짤막한 한마디였다. ‘내가 말했지. 그렇게 파인 옷 입지 말고, 쏘다니지 말라고~’. 천송이에 대한 도민준의 모든 것이 이 말에 함축되어 있다. 앞서 별로 떠나기전 주변에 천송이를 돌봐달다는 도민준의 디테일한 당부는 여심을 더 울렸다.

첫회부터 별그대는 젊은층과 여성층의 내면을 파고들 드라마적 흥행요인을 모두 다 갖췄다. 여성시청자들의 가슴속 로망이 판타지로 깔려있기 때문이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할 수록 마지막회까지 시청자 몰입도는 더 강해졌다.

시종 흐르는 천송이의 도민준, 도민준의 천송이에 대한 애절한 갈구(渴求)는 마침내 두연인의 재회라는 현실로 표현됐다. 갈구가 애절할수록 해피엔딩을 암시하는 반전 효과도 컸다. 혜성과 함께 스쳐가는 유성비 속에 비행 우주선이 지구에 착륙하는 장면은 1회와 똑같이 만화영화같은 구성요소들이었지만 오히려 시청자들이 비상식을 잊게 하는 시각효과로 작용했다.

드라마 시청자들의 TV시청의 기술은 갈수록 진화한다. 그런 점에서 시청자들의 의표를 찌른 창의성, 특히 식상한 막장의 요소나 고답적 틀을 벗어나려는 제작진의 노력이 단연 돋보였다.

별그대가 대박난 비결 중 제일 꼽을 것은 당연히 도민준과 천송이의 캐릭터다. MBC의 ‘해를 품은 달’에서 여심을 울린 김수현의 일품연기는 한층 더 빛을 발했다. 하지만 김수현 프리미엄에 결코 뒤지지 않은 전지현의 연기력은 그야말로 대스타의 면모를 유감없이 확인시켜주었다.

한마디로 전지현만이 할 수 있었다. ‘엽기적인 그녀’에서 드러난 페르소나가 별그대에 그대로 이어졌다. TV가 아닌 영화에 주로 출연했던 전지현에겐 별그대가 당초 도박이었을지 모른다는 불안도 있었을 것이다. 지난해 영화 ‘도둑들’에서 히트한 전지현은 다시 도박이 아닌 대박을 쳤다. 대박의 비결은 역시 전지현의 명품연기였다.

잔악한 ‘사이코패스’인 이재경(신성록 분)의 몰락은 권선징악이란 사회통합적 가치에 기반한 해묵은 드라마문법의 결론이다. 그러나 식상하지는 않다. ‘돈이면 뭐든 할수 있다’는 맹목적인 ‘머니즘’(Moneysm)에 물든 사회에 대한 시청자들의 카타르시스가 되었다고나 할까. 이 카타르시스가 판타지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짐으로써 반전의 클라이맥스를 만들어내는 결정적 구성요소로 작용했다.

별그대는 이제 광풍처럼 스쳐갔다. 시청자들의 뇌리를 스치는 또 한가지. 바로 가수 린이 부른 OST ‘너는 내 운명’(You are my Destiny)이다. ‘운명과 사랑’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판타지드라마의 핵심이다.

허무맹랑한 판타지드라마가 이렇게 시청자 마음을 휘젓고 간 자체도 놀랍다. 하지만 통속을 뛰어넘은 로맨틱드라마의 새로운 전형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별그대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별그대의 드라마 구성적 가치가 매우 색다르다.

알퐁소 도데의 ‘별’이 자꾸 연상된다는 주변의 시청자들이 많을 걸 보니 별그대의 후유증은 당분간 이어질 것 같다. 별그대의 가장 큰 후유증은 이게 아닐까 싶다. 누구나 내면 깊이 감춰두었던 꿈과 사랑, 일탈이란 시청자들의 원초적 본능을 무자비하게 밖으로 끄집어내버렸다는 점이다.

쿠키뉴스 논설위원 겸 방송문화비평가 kyung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