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사관생도 1기 지금은…] 전투기 조종사… 작전 참모… 陸·海·空 ‘종횡무진’

입력 2014-03-01 03:35 수정 2014-03-01 15:12

“이제는 ‘여성사관생도 1기’라는 부담감에서는 많이 벗어났습니다. 남성들만의 세계였던 사관학교에 서 이질적인 존재가 되지 않으려고 애썼고 지휘관 생활을 하면서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부담도 컸지만 무난히 통과해온 것 같습니다.”

육·해·공군 사관학교가 여생도들에게 문을 연 지 10년이 넘었다. 1997년 공군사관학교가 처음으로 여생도를 받아들인 뒤 98년 육군사관학교가, 99년에는 해군사관학교가 연이어 여성사관생도를 선발했다. 97년 공사에 입교해 임관한 18명의 1기 여생도 가운데 현재 16명이 현직에서 복무 중이며 육사 여생도 1기는 20명 가운데 18명이, 해사 여생도 1기는 21명이 임관해 단 한 명만 전역하고 20명이 현직에서 근무하고 있다. 이들은 전투기·헬기·수송기 조종사로 함대사령부 정보작전참모, 3군사관학교 교수요원 등 곳곳에서 맹활약을 하고 있다.

◇군인은 나의 천직(天職)=1기 여생도들의 공통점은 철저한 프로의식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육군 6사단 군수처 수송장교인 김소진(35) 소령은 임관 후 보병 소대장과 중대장을 거친 뒤 지난해 6월부터 수송장교로 근무하고 있다. 김 소령은 “군수물자에 대한 꼼꼼한 관리와 정확한 관리가 필요한 부분이어서 적성에 맞는다”며 “이전에 주어진 어떤 업무에도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공사 여생도 1기인 장세진(35) 소령은 공군 남부전투사령부 수송기를 담당하고 있다. 장 소령은 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고등비행훈련을 마치고 5전술비행단을 거쳐 남부전투사령부에서 근무했으며 2012∼2013년 국방대학교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뒤 복귀했다. 장 소령은 “가장 중요한 것은 실력이라고 생각한다”며 “새로운 지식을 얻기 위한 노력을 쉬지 않는다”고 말했다. 해군본부 정훈공보실에서 근무하고 있는 정원주(35) 소령은 임관 후 첫 전투함 승선 여군이 됐고 서태평양 기뢰대항전 훈련에도 처음 참여했다. 정 소령은 “밤을 꼬박 새우거나 새벽까지 업무와 씨름하는 날이 적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이들이 가장 큰 보람을 느끼는 것은 업무에 대해 높은 평가를 받을 때다. 육군본부 비서실 정책과에서 군사외교계획장교로 근무하고 있는 최혜선(35) 소령은 임관 후 처음 수행한 소대장 시절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최 소령은 소대원들이 자랑스럽게 “우리 소대장님이 이렇게 가르쳐주셨다”는 말을 했을 때, 또 중대장이 소대점검을 마친 뒤 “소대원들 한명 한명이 최선을 다하더군, 보기 좋았어”라며 어깨를 두드렸을 때 가슴이 뭉클했다고 전했다.

해군 2함대 전비전대 정보작전참모로 근무 중인 안희현(35) 소령은 공주함 작전관으로 작전지휘책임을 지고 있을 때를 가장 잊을 수 없다고 회상했다. 120명의 승조원을 지휘하며 10일간의 작전임무를 무사히 마치고 평택항에 입항했을 당시 함장이 “수고했다. 훌륭했다”고 평가했을 때 눈물이 나올 정도로 기뻤다고 했다.

이들이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던 사관학교에 도전한 것은 새로운 영역에 대한 호기심과 도전의식이 발동해서다. 육군 3사관학교 교수로 근무하고 있는 이귀현(35) 소령은 “여성이지만 내 능력을 객관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에 지원했다”고 밝혔다. 최 소령은 “국가를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과 여성에게 처음 열리는 기회라는 것이 매력적이었다”고 말했다. 장 소령은 “운명인 것 같다”고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1기’라는 부담감=이들은 대부분 꼼꼼한 성격에 무슨 일을 하든 철저하게 해내야 하는 근성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프로의식을 더욱 강하게 만든 것은 오히려 ‘1기’라는 부담감이다. 정 소령은 “나로 인해 여군들이 폄하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컸다”고 토로했다. 최 소령도 “여성에게 처음으로 주어진 기회인데 실망시켜서는 안 된다는 부담감이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이들은 생도시절 남자 생도들에게 뒤지지 않기 위해 악착같이 체력을 기르고 공부했다. 학과공부는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체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안 소령은 무게가 3.2㎏인 소총을 들고 2시간 정도 훈련받고 나서 팔이 후들후들 떨려 고생했다고 한다. 야간훈련이 힘겨워 훈련이 있는 날은 비가 오기를 간절히 기원하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최 소령도 거의 매일 체력강화를 위한 훈련을 했다고 말했다. 물론 실수를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최 소령은 “10여년이 흘러 당시 뭐가 그리 어려웠는지는 생각나지 않지만 좌충우돌했었다는 인상이 오래 남아 있다”고 회상했다. 처음 들어온 여생도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어색해했던 교관도 있었고 남자생도들에게는 혹독하게 야단을 치지만 여생도들에게는 자상하게 대해주는 선배들을 보면서 훈련을 제대로 못 받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도 했다고 한다.

여생도들 사이의 전우애(戰友愛)도 남다르다. 통상 사관학교에 정식 입학하기 전에 갖는 가입교기간의 혹독한 훈련을 못 이겨 포기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육사 여생도 1기들은 서로 격려하면서 한 명도 포기하지 않고 전원 입교했다. 생도시절에도 서로 힘이 됐다. 김 소령은 “선배들이 없다보니 어떻게 하든 우리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며 “지금도 밴드와 카카오톡을 통해 현장에서의 어려움을 서로 나누고 도움을 주고받는다”고 말했다.

부부군인이 많은 점도 이들의 특징이다. 장 소령의 남편은 동기생으로 F-15K전투기 조종사이고, 최 소령의 남편도 동기생이다. 안 소령의 남편은 3년 선배로 해병대에서 근무하고 있다.

이들은 이제 더 이상 주변의 관심을 끌지 않는 것이 가장 편안하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현재는 여생도를 위한 시설도 제대로 구비되지 않았던 불편함도 개선됐고, 육아휴직이라는 말을 꺼내기 힘들었던 시절과 달리 이를 권장하는 등 여군 근무여건도 좋아졌다. 일부에서는 남생도들이 역차별을 받는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장 소령은 “남녀의 신체적인 차이에 따른 구별은 있을 수 있지만 차별은 많지 않다”며 “여군과 남군의 차이가 아닌 군인으로서의 개인적인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 hs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