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 ‘외국 승무원 위탁교육’ 현장] 기내 탈출 뒤 물속으로 풍덩… 해병대 뺨치는 비상훈련

입력 2014-03-01 01:31


“손님 여러분, 이 비행기는 앞으로 약 7분 후 비상착륙하겠습니다. 지금부터 승무원의 지시를 따라주십시오.”

기내 안내방송 후 착륙 시간이 다가오자 충격방지자세(Brace Position)를 취하라는 “Brace(대비하시오)”를 외치는 승무원들의 고함 소리가 기내에 반복해서 울려 퍼진다. 승무원의 신호에 맞춰 승객들은 앞좌석에 손을 댄 후 머리를 숙이고 자세를 취한다. 잠시 뒤 승무원들이 다시 “Evacuate(탈출하라)”를 외치자 승객들은 문을 향해 빠르게 이동한다. 승객들은 승무원의 지시에 맞춰 문 앞에 펼쳐진 탈출 슬라이드(Escaping Slide)를 통해 건물 2층 높이 비행기에서 미끄러져 내려간다. 승무원은 승객들을 탈출시킨 뒤에도 기내에 나머지 승객이 있는지 확인한 후에야 슬라이드를 이용해 탈출한다.

지난 20일 서울 강서구 오정로에 위치한 아시아나항공 교육동에서는 16명의 러시아 오로라항공 경력 승무원들이 목업(Mock-up·기체 일부를 실물 크기로 만든 모형)에서 ‘예상된 비상탈출(Planned Evacuation) 훈련’을 진행 중이었다. 교관인 아시아나항공 캐빈서비스훈련팀 강연재 부사무장과 양송희 선임승무원은 교육 진행 사이사이 승무원들의 틀린 점을 바로잡아 주고, 비상탈출 절차를 반복해서 숙지시켰다. 강 부사무장은 “실제 상황에선 자세를 취하기도 전에 바로 슬라이드를 타야 할 정도로 신속하게 탈출해야 할 경우가 많다”고 경각심을 일깨웠다.

실제 미국연방항공청(FAA)과 유럽항공안전청(EASA)은 비상탈출 시 90초 안에 승객과 승무원 전원을 탈출시키도록 하고 있다. 90초가 지나면 충격에 의한 화재나 폭발의 위험이 있고, 바다에 비상착륙했을 경우 그 이상 떠 있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90초 룰’은 기종에 상관없이 적용된다. 항공기 역시 실험을 통해 90초 이상 물 위에 뜨지 못할 경우 상업운행이 안 된다. 지난 2006년 승객 853명이 탑승한 것을 가정한 A380 비상탈출 테스트에서는 승객과 승무원이 78초 만에 탈출했다.

탈출 후에도 승무원의 역할은 계속된다. 바다에 비상착륙했을 경우를 가정한 비상착수교육은 승무원 교육과정 중 가장 힘든 훈련으로 손꼽힌다. 오로라항공 승무원들은 비상착수훈련장에 설치된 목업에서 탈출한 후 보트에 올라타는 교육을 진행했다. 먼저 구명조끼를 입은 승무원들은 팔을 양쪽으로 뻗고 다리를 앞뒤로 벌린 채 잇따라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마찰력을 크게 해 수면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물속에 뛰어든 후에는 최대한 빨리 비행기에서 멀어질 수 있도록 수영장 반대편 끝까지 헤엄친다. 이후 물에서 보트 역할을 하는 탈출 슬라이드에 올라탄다. 탑승 인원이 많을수록 높이가 낮아지는 것을 감안해 처음에는 남자 승무원이 먼저 올라타 뒷사람을 끌어올린다. 보트가 없는 상황을 가정해 승무원들이 서로 팔을 걸어 원을 만든 후 파도에 견디는 훈련도 진행했다. 외국 항공사 승무원 교육을 담당하는 이동훈 부사무장은 “비상착수훈련은 체력적·정신적으로 힘든 훈련으로 신입 승무원의 경우 이 훈련을 통과하지 못해 탈락하는 경우도 많다”고 귀띔했다.

아시아나항공은 이 밖에도 기내 화재 교육 등 이틀에 걸쳐 모두 11시간 동안 오로라항공 승무원들을 교육했다. 2007년부터 외국항공사 승무원에 대한 안전교육을 담당해온 아시아나항공은 지금까지 6개 항공사 2355명의 승무원에 대해 교육을 진행했다. 외국항공사 중 규모가 작은 항공사는 교육 프로그램은 있을 수 있지만 교육 시설이나 교관이 갖춰지지 않은 곳이 많아 우리나라 등에서 교육을 받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매뉴얼에 따라 안전 교육을 진행하되 항공사들이 별도로 원하는 부분을 추가로 교육하기도 한다. 외국 항공사의 경우 주로 경력 승무원의 정기 교육을 진행하지만 신입 승무원의 첫 교육을 맡기도 한다. 교육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항공사 승무원 간 비교가 이뤄지기도 한다. 이 부사무장은 “외국 승무원의 경우 비상시 절차에 대한 숙지도 등에서는 다소 부족한 점이 있지만 비상착수훈련 같은 체력을 요하는 교육에서는 강점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고 소개했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