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한인 최초 교향악단] LA에 사랑의 하모니… 주기도문 작곡가 제자 교민들 마음 지휘하다
입력 2014-03-01 01:31
LA 코리안 필 오케스트라 초대 지휘자 조민구
미국 로스앤젤레스 윌셔 에벨 극장(Wilshire Ebell Theatre)에서 지난 23일 오후 7시(현지시간) 열린 ‘로스앤젤레스 코리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LAKPO)’ 창단 44주년 기념공연에는 재미교포 1300여명이 객석을 가득 채웠다. 장기웅 뮤즈심포니오케스트라 예술감독(동아방송예술대 교수)의 지휘로 ‘코리안 아메리칸 판타지’가 초연되는 동안 LA교포 이민사의 순간순간이 영상으로 상영됐다.
재미교포 영상작가 오셀오가 제작한 영상 다큐멘터리는 110년 전 하와이를 거쳐 처음 LA에 도착할 때부터 지금까지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선보였다.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과 광복, 6·25전쟁과 눈부신 경제발전 등 장면과 함께 이역만리 타국에서 지내온 교민들의 모습이 비쳐지자 많은 관람객들이 눈시울을 붉혔다. 공연은 LAKPO 초대 지휘자 조민구(82)씨에 대한 보은음악회로 개최됐다.
조씨는 LA 한인 음악인 가운데 최고 원로로 재미교포 이민사의 산 증인이기도 하다. 1960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1969년 LAKPO를 창단하고 초대 지휘를 맡았다. 팔순의 나이에도 열정을 불태우는 LA 한인 음악계의 대부 조씨를 현지에서 만나 라이프 스토리를 들어봤다.
# 충청도 시골소년 플루트 연주자가 되다
충남 서천에서 어부의 아들로 태어난 조씨는 중·고교 때 서울로 유학을 왔다. 중앙중·고교에 진학한 그는 밴드부에 가입해 플루트를 배웠다. 1940년대 당시로서는 웬만큼 부유한 집안 자녀가 아니고는 악기를 배우는 게 쉽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음악에 소질이 남달랐던 그는 고기잡이 선박을 세 척 소유한 아버지 덕분에 그토록 원하던 플루트를 사서 연주할 수 있었다.
많은 악기 가운데 여성들이 주로 다루는 플루트를 선택한 이유는 뭘까. “제가 체구가 작아 바이올린이나 첼로 같은 것은 무거워서 다루기가 쉽지 않았어요. 우연한 기회에 플루트를 접하게 됐는데 ‘바로 이거다’ 싶더라고요. 높고 낮은 음을 자유자재로 연주할 수 있는 악기였죠.”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6·25전쟁이 터졌다. “군 입대 영장이 나왔는데 육군군악대에 찾아갔어요. 플루트 연주자로 써 달라고 떼를 썼죠.” 그는 전쟁이 끝난 후 KBS교향악단 창립 멤버로 입단했다. 이승만 대통령 시절 주한 미국대사 월터 매카나기를 만났다.
“음악을 좋아한 매카나기 대사가 플루트를 배우고 싶다고 연락이 왔어요. 그냥 편하게 가르쳤죠. 그러면서 영어도 좀 배우고 했는데 대사가 ‘미국으로 음악공부를 가고 싶지 않으냐’고 제안하는 거예요.” 조씨는 매카나기 대사의 도움으로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미국 이민생활의 시작이었다.
# ‘주기도문’ 작곡가의 제자가 되다
한국에서 번 돈을 카지노에서 탕진한 조씨는 정신을 차리고 ‘셔먼스쿨 오브 뮤직(Sherman School of Music)’에서 음악을 공부했다. 그때 만난 스승은 1935년 ‘주기도문(The Lord’s Prayer)’을 작곡한 미국 음악가 앨버트 헤이 맬롯(1895∼1964)이었다. 현대음악사의 한 페이지를 차지하는 맬롯은 숨지기 1년 전 ‘주기도문’ 악보 원본과 자신의 사진을 조씨에게 선물로 건넸다.
스승의 유품을 50년 동안 소중하게 간직하던 조씨는 이를 세상에 널리 알리기 위해 지난해 장기웅 감독에게 기증했다. 장 감독은 조씨의 뜻을 받들어 지난 2월 4일자 국민일보(1·2면)를 통해 공개했다. 세계적인 가스펠 가수들이 즐겨 부르는 ‘주기도문’의 악보 원본과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작곡가의 얼굴이 약 80년 만에 빛을 본 것이다.
1965년 음악 석사학위를 딴 조씨는 미국 고등학교 음악교사를 지내다 69년 LAKPO를 창단했다. 이후 홍콩 일본 태국 필리핀 베트남 등에서 지휘를 하고, 중국 정부로부터 상하이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 초청받아 힘 있고 세련된 연주로 찬사를 받으며 영구초청 지휘자로 임명되기도 했다.
# 세계에서도 인정받는 음악인이 되다
1991년 3월 제71회 할리우드 집회 연주를 맡은 조씨는 미국 주요 TV와 라디오 방송을 통해 유명 인사가 됐다. 같은 해 10월 지휘자로서는 세계 최고의 상 ‘프릭스 마르텔(Prix de Martell)’을 동양인으로는 처음 수상했다. 이 상을 받은 지휘자는 런던필하모닉의 게오르그 솔티, 뉴욕필하모닉의 주빈 메타 등이 있다.
92년 LA에서 발생한 4·29 폭동사고 이후 한·흑 갈등 해소를 위한 ‘우정 콘서트’를 개최해 타민족 음악인들이 한국 가곡을 불러 인종 간의 화합을 이끌었다. 이 같은 역할로 캘리포니아주와 LA시로부터 감사패와 공로장을 받았다. 조씨는 “저 혼자 받은 상이 아니고 LAKPO 단원들과 한인 음악인들, 그리고 교민들이 함께 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조씨는 이번 보은음악회를 끝으로 44년간 잡았던 LAKPO의 지휘봉을 내려놓는다.
조씨의 자녀는 딸만 셋이다. 모두 할리우드 영화사에서 일한다. 그는 “형제 같고 자식 같은 교민들과 동고동락한 세월이 어느 덧 50년이 넘었다. 감개무량함을 느낀다. 일선에서는 물러나지만 교민들이 부르면 언제든 어디든 달려갈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로스앤젤레스=글·사진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