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사관생도 1기 지금은…] 女軍이 아닌… 나는 軍人이다

입력 2014-03-01 01:35


지난 27일 새벽 6시. “따르르릉.” 어김없이 울리는 자명종의 벨소리는 신체 시계보다 항상 늦다. 충남 계룡대 육군본부 비서실 정책과 군사외교계획 장교인 최혜선(35) 소령은 10여년간의 긴장된 생활이 몸에 밴 탓인지 늘 시계소리보다 먼저 눈을 뜬다.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은 시어머니가 키워주고 있는 어린 아들이다. 일과 육아를 양립하기 위해 아직은 주변의 도움이 필요하다. 최 소령은 매일 “네가 꼭 자랑스러워할 일을 할거야”라고 다짐한다. 이제 다음주면 그간 시골 시어머니 댁에 있던 아들을 매일 볼 수 있다. 친정어머니가 집에 와서 키워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전날 전방부대로 전근 간 남편의 빈자리 때문인지 오늘은 작은 군인아파트가 갑자기 커진 느낌이다. 하지만 6년 만에 아들과 함께 산다는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벅차오른다.

1998년 육군사관학교가 여성에게 문호를 개방한 첫해 육사 여생도 1기로 입교한 최 소령은 2005년 동기생과 결혼했다. 결혼 9년째지만 부부가 함께 생활한 시간은 최 소령의 육아휴직 11개월을 포함해 3년 남짓이다. 가족 생각은 잠시뿐이다. 최 소령은 서둘러 출근 준비를 한다. 오전 7시 사무실에 도착하면 곧바로 간밤에 발생한 국내외 특이사항을 정리해 상사인 강건작 대령에게 보고한다.

보고를 마치면 8시쯤 된다. 그 이후에야 최 소령은 자신의 일을 시작한다. 최 소령은 뛰어난 어학 실력과 꼼꼼한 일처리로 군내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군사외교계획 업무는 그간 남자 장교들이 도맡아 왔지만 실력을 인정받아 이 업무를 담당하게 됐다. 요즘은 곧 있을 고위 외국 인사 초청 행사로 쉴 틈이 없다. 군사외교는 고려해야 할 사안이 많은 복잡한 작업이다. 오전 오후로 회의가 이어지고 외국 육군본부와 무관부, 우리 외교통상부 등 관련된 곳이 많아 수시로 전화를 해야 한다. 외국과의 업무인지라 시차 때문에 저녁 늦게, 혹은 새벽 일찍 전화 통화를 해야 하는 일도 비일비재다. 과장인 강 대령은 최 소령에게 “주말에는 아들을 보러 가라”고 강권한다. 이렇게 명령하지 않으면 완벽주의자로 일에 몰두해 있는 최 소령이 아들 만날 생각도 잊고 일만 할 것 같아서다. 얼마 전 최 소령이 “아들 재롱잔치가 있어 나가봐야 한다”고 말했을 때 강 대령은 비로소 ‘이 사람도 엄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최 소령의 일과는 늦은 밤 아들과의 전화 통화로 마무리된다.

최 소령은 육군본부 동원전력실, 수방사 예하 연대 작전장교를 거쳤다. 최 소령은 임관 후 첫 보직으로 보병 소대장을 맡았다. 처음에는 ‘여자가 소대장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지만 제대로 해냈다는 평가다. 남들은 힘들다는 기동훈련도 오히려 재미있게 했다. 다른 업무도 별로 어렵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남성 중심의 군 조직에서 어려운 것은 편견을 극복하는 일과 대인관계였다. 여자와 남자가 다르다는 것을 절감할 때가 많았다. 그럴 때는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 융화하면서 원만히 풀어나갔다고 한다.

이날 서울 태릉 육군사관학교와 경남 진해 해군사관학교, 충북 청원 공군사관학교에서는 최 소령의 뒤를 잇는 사관학교 여생도들이 배출됐다. 졸업생도 482명 가운데 여생도는 육군이 17명, 해군과 공군이 10명씩 총 37명이었다. 이들도 최 소령이 걸어왔던 길을 걸어갈 것이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 hs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