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경호] 광기의 역사

입력 2014-03-01 01:32

운하의 나라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 담스퀘어 서편에 역사의 현장이 있다. ‘안네의 집’이다. 비좁은 2층 계단 옆 회전책장 뒤에 ‘비밀의 다락방’이 있다. ‘안네의 일기’를 쓴 유대계 안네 프랑크의 은신처였다.

안네는 1942년 6월부터 1944년 8월까지 나치를 피해 이곳에서 2년 넘게 은거했다. 비밀경찰에 붙잡힌 안네는 아우슈비츠에 끌려갔다 장티푸스에 걸려 16살의 짧은 생을 마쳤다. 소녀의 눈에 비친 살육의 광기가 일기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전시관 ‘안네프랑크 하우스’에는 각국 60개 언어로 번역된 ‘안네의 일기’가 있다. 그 옆 안네의 동상은 ‘광기의 역사’를 증언한다.

폴란드 아우슈비츠는 수백만의 유대인 대학살극이 자행된 역사의 현장이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쉰들러리스트’의 배경이 된 이곳은 1979년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다시는 반인간적인 비극이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는 염원이 담겨 있다. 3㎞ 떨어진 제2수용소에는 아우슈비츠행 열차의 종단점인 ‘죽음의 문’이 있다. 이곳에도 국제위령비가 있다. 가해자 독일의 빌리 브란트 총리는 1970년 12월 바르샤바 유대인 위령탑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를 했다. 지난 25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이스라엘 정부로부터 명예시민 메달을 받았다.

그런데 일본은 영 딴판이다. 무슨 까닭인지 ‘안네의 일기’까지 수모를 당했다. 지난 24일 도쿄 5개 구와 외곽지역 3개 시의 도서관 38곳에 비치된 ‘안네의 일기’ 총 305권이 훼손된 채 발견됐다. 나치의 만행을 고발한 16살 소녀의 일기마저 그들에겐 부정돼야 할 대상일까. 그뿐 아니다. 가해 일본은 사죄는커녕 전범(戰犯) 유품마저 내년에 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에 등재하려 한다. 가고시마현 ‘지란특공평화회관’에 보관된 가미카제 자살특공대원의 유서와 편지 등 33점이 등재 대상이다.

오늘은 제95주년 3·1절. ‘안네의 일기’를 훼손하고, 전범을 미화하는 일본의 우경화는 군국주의 망령을 떠올리게 한다. 안네 같은 ‘소녀 유관순’이 가슴을 저민다. 안네 동상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소녀상’을 닮았다. 역사학자 E H 카는 역사를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광기의 역사를 외면한 ‘아베의 일본’은 어디로 가려는 것일까.

김경호 논설위원 kyung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