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희망지기-정순훈] “취업난, 한국 청년들에게 고함 떠나라, 몽골에도 길은 있더라”
입력 2014-03-01 01:37
정순훈 몽골 후레정보통신대 총장
‘욕위대자 당위인역(欲爲大者 當爲人役·크고자 하거든 남을 섬기라).’ 1885년 배재학당을 설립한 헨리 아펜젤러 선교사가 학당 훈으로 내건 성경말씀(마 20:26)이다. “요새 말로 풀면 ‘서번트 리더십’이죠. 현대인에게 적용해도 손색없는 말이에요. 129년 전의 어르신께서 어떻게 이런 기가 막힌 말씀을 당훈으로 삼았는지 몰라.” 정순훈(62) 후레정보통신대(후레대) 총장의 말이다.
그래서일까.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의 꿈은 배재고와 연세대를 거쳐 배재대 교편을 잡은 정 총장에게 시나브로 이식됐다. 2003년 배재대 총장이 된 그는 2011년 총장직을 사임하고 몽골로 떠났다. 정년퇴임을 6년 남기고 내린 용단이다. “다들 미친놈이라 그래요. 이 나이 되면 정리해야지 왜 시작하느냐고. 그런데 목표를 세우고 도전하는 게 아주 재미있거든요. 근데 여기에 선교까지 할 수 있다니, 얼마나 보람차요?” 상기된 어조로 몽골 사역의 비전을 이야기하는 그는 아직도 꿈꾸는 소년 같았다. 최근 범아시아·아프리카대학협의회(PAUA) 대회 참석차 방한한 그를 서울 연세대 루스채플에서 만났다.
‘우리말 전도사’에서 교육선교사로
정 총장은 헌법학자다. 84년 배재대 법학교수로 임용된 그는 2003년부터 8년 동안 총장을 역임했다. 총장이 된 뒤 그가 관심을 쏟은 분야는 ‘한국어 교육’이다. 국문학자가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걸 본 정 총장은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한국에 관심 갖는 세계인은 점차 늘어난다. 우리도 테솔(TESOL)처럼 외국인 학습자를 가르치는 한국어 교육과정이 있을까?’ 알아보니 한국어 전문가를 양성하는 학부과정은 없었다. 그는 ‘외국어로서의 한국어’를 가르치는 한국어문학과를 국내 최초로 신설했다.
우리말에 대한 그의 열정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중앙·동남아시아의 열악한 한국어 교육환경을 확인한 정 총장은 우리말 교재와 교사를 해외로 보내는 운동을 펼쳤다. 이 과정에서 그는 7개국 30여곳에 배재한국어센터를 지었다. 한국어 교사가 가르칠 장이 있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한국어교육뿐 아니라 유학생 유치에도 적극 나섰다. 정 총장은 한 달에 열흘 정도 해외출장을 다니며 50개국에서 유학생을 데려왔다. 그의 성과를 눈여겨 본 정부는 비전공자인 그에게 2007년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어세계화재단 이사장을 맡기기도 했다.
신나게 일하던 그가 교육선교사로 나서게 된 건 2009년 후레대 설립자인 김영권 전 건국대 교수를 만나고부터다. 후레대에서 자원봉사를 했던 신임교수가 이들의 만남을 주선했다. 김 전 교수는 초면인 정 총장에게 후레대 총장 자리를 제안했다. 정 총장이 무심결에 던진 한마디 말 때문이었다.
“노교수님께 ‘고생하십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시네요’라 말씀드렸죠. 그랬더니 교수님께서 ‘마침 모든 걸 맡길 후임자를 찾았는데 하겠다는 사람이 없다’며 총장 자리를 강권하는 겁니다. 다시 ‘전 돈이 없는데 학교를 어떻게 운영합니까’라 말하니 ‘선교는 돈으로 하는 거 아니니 해 보라’고 답하시더군요. 결국 어른께 제가 졌지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리 나쁜 제안은 아니었다. 언젠가 교육자로서 사학법인을 설립하는 꿈을 키웠던 정 총장은 이 제안이 한편으론 기회처럼 느껴졌다. 꼭 총장이 아니라도 좋았다. 교육으로 한 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인재를 키우는 일이라면 평생을 걸을 만하다 판단했다. 결국 은퇴 뒤 안락한 삶을 버리고 2011년 배재대 총장직을 사임했다. 기독사학의 수혜자였던 그가 교육선교사로 바뀐 순간이었다.
좋은 대학이 곧 ‘좋은 선교’다
2002년 김 전 교수가 설립한 후레대는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 있다. 학교명 ‘후레(Huree)’는 울란바토르의 옛 지명을 딴 것이다. 전공은 16개이며 학생은 1200명이다. 정보통신대학이란 이름에 걸맞게 공학과 정보통신학 전공이 많고 인기도 높다.
정 총장은 ‘몽골의 카이스트를 만들자’는 꿈을 품고 2011년 3월 울란바토르에 도착했다. 그곳은 마치 시계를 60년대로 돌린 듯했다. 교직원 숙소가 없어 학교 인근에 아파트 한 칸을 얻었다. 물이나 전기가 자주 끊겼다. 날씨가 매우 추워 외부활동의 제약을 받는 날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문화차이었다. 과거 사회주의 국가였던지라 몽골인은 일에 대한 가치관이 한국과는 달랐다. 대학 구내식당 직원이 급여일 다음날 예고 없이 그만둬 모든 교수가 장을 보고 요리를 하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사회주의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몽골은 고용의 가치가 일의 효율보다 앞섭니다. 한 사람이 할 일을 열 사람이 나눠서 하죠. 생활이 어려운 것은 각오했던 터라 그다지 힘들진 않았어요. 그런데 현지인 교직원이나 학생들이 노력하지 않는 모습을 볼 땐 내 생각과 같지 않아 답답했습니다.”
그렇지만 정 총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교육선교사로서 몽골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문화차이를 받아들이되, ‘노력’의 미덕을 가르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아펜젤러 선교사의 설교집에 한국인에 대한 험담이 전혀 없던 것을 기억했다. 정 총장과 교수진은 몽골 문화를 지적하는 대신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일하며 모든 일에 솔선수범했다.
“4년간 지내보니 몽골은 정말 강한 신념이 없이는 선교할 수 없는 나라더라고요. 민주주의가 되긴 했지만 종교에 우호적이지 않아요. 우선 대학 내 교회를 세울 수 없습니다. 총장인 저도 매일 열리는 교직원 기도모임에 나갈 수 없고요. 총장이 참석하면 학내 종교 활동에 참여했다고 고발하거든요. 이런 환경에서도 학교와 학생이 성장할 수 있었던 건 교수들의 기도와 헌신 덕 아니겠어요.”
후레대에서도 정 총장은 명확한 목표를 세웠다. 박사급 기독과학자 1만명 양성,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 10만명 양성, 의과대학 설립 세 가지다. 그는 특히 소프트웨어 산업이 국가 기간사업이 되도록 힘을 보태고 싶다고 했다. 몽골의 발전을 위해선 미래 먹거리 발굴과 과학기술발전이 시급하다는 판단에서다. 그는 이 세 가지 목표를 이루면 몽골의 발전이 앞당겨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저와 교직원들은 지금 과거에 삽니다. 한국이 겪었던 일을 몽골도 겪고 있어요. 우리 눈엔 엘리트를 키우고 산업을 발전시키는 방법이 훤히 보입니다. 선교도 마찬가지예요. 연세대, 이화여대가 한국사회에 미친 영향을 생각해 보세요. 좋은 대학을 많이 만들면 자연히 좋은 선교가 되는 겁니다.”
청년들이여 눈을 높여라
한국처럼 몽골도 청년실업은 심각한 사회문제다. 하지만 후레대 졸업생의 취업률은 80%(유학 포함)로 비교적 높은 편이다. 졸업생 대부분은 통신회사나 건설·토목회사에 취업하거나 한국으로 유학을 온다. 정 총장은 작년 후레대가 몽골대학의 상위 10위권에 진입했고 한국에서 석사를 받고 취업한 졸업생이 늘고 있다며 자랑스러워했다.
“얼마 전 배재대를 방문했다 후레대 졸업생들과 만났어요. 그런데 한 청년이 내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해요. 도와주셔서 석사 마치고 취업했는데 연봉이 2700만원이라는 거예요. 몽골에선 교수 월급이 30만원인데, 이 청년이 몽골 대통령만큼 받는 거지요(웃음). 그간 제가 꿈꿨던 일이 실현가능하단 생각에 얼마나 뿌듯하던지.”
그는 한국교회가 몽골 인재를 후원하는 일에 적극 나서 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1004개 교회가 1계좌 1000만원씩 한 학생의 장학금을 지원하는 ‘1004장학금’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했다.
“대학 등록금이 1년에 100만원인데 이를 충당치 못하는 이들이 전교생의 3분의 1 정도 돼요. 1000만원을 예치해 놓으면 한 명의 학생에게 4년 장학금을 줄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몽골 수능 만점자가 우리 학교를 오기도 했어요. 몽골 정부 요직에 진출할 재목을 한국교회가 키워낸다고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몽골 복음화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어요. 학원선교는 교회로선 성공률 100%의 투자입니다.”
아울러 그는 실업문제로 고통 받는 한국 청년에게 ‘한국을 떠나라’는 돌직구 조언을 했다. 한국에서 교육받은 실력과 타고난 성실함이라면 세계 어디서든 성공할 수 있다는 것. 다만 몽골처럼 아직 발달되지 않은 나라로 떠나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경쟁력이 있다는 것이다.
“많은 학자들이 눈을 낮추라고 하지만, 전 청년들에게 오히려 눈을 높이라 하고 싶어요. 세계엔 사업과 선교하기 좋은 나라들이 많이 있어요. 이런 곳을 개척한 청년들, 5∼10년 새 모두 성공합니다. 물론 1∼2년 고생하죠. 하지만 100세 시대 이 정도 고생은 아무것도 아니지요. 눈을 높이고 인내심만 있으면 길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특히 신앙인이라면 더 도전해 볼 만해요. 선교도 하면서 자신의 꿈을 펼치고 성공할 수 있으니까요.”
정 총장은 인터뷰를 마치고 기자에게 학교자료를 건네며 간절함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한국 교회가 학교 건축을 도와주었으면 좋겠어요. 우리 교수들이 무보수로 얼마나 고생을 하는데….” 그는 교회에 할 말이 많아 보였다. 그만큼 학교 발전을 위한 꿈이 크다는 방증일 것이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